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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필요한 것은 한 가지

by 분당교회 2016. 7. 22.

필요한 것은 한 가지


예수께서 유난히 사랑하던 한 가정이 있습니다.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의 가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했던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모습은 대조적입니다. 마르타는 매우 적극적이고 행동적입니다. 라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께서 찾아오실 때 마르타는 마중을 나가고 마리아는 집 안에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부르신다는 말을 듣고서야 집을 뛰쳐나가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언니 마르타와는 달리 마리아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보여줍니다.


그 사건 후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합니다. 라자로는 손님들 사이에 끼어 예수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고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다닙니다. 그 때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르드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을 닦아 드립니다.(요한 12:2-3) 같은 식사 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마르타는 음식 만들랴, 시중들랴 매우 분주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만 듣고 있습니다. 마르타 입장에서는 마리아가 얌체로 보입니다. 동생이 얄미워 마르타는 예수님께 마리아더러 일을 좀 거들어주라고 말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뜻밖입니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집에 계신 예수, 벨라스케스)


성경의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마르타가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일하는 언니를 거들어 줄 생각도 안하고 방안에 앉아있는 동생이 얼마나 미울까요?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동생을 꾸짖기보다는 오히려 역성을 들어주니 자신의 노력과 봉사가 갑자기 하찮은 일 취급당하는 허망한 기분일 것입니다. 사실 교회나 사회에서 이렇게 봉사하는 사람들의 수고가 낮게 평가되는 부당함(?)을 많이 봅니다. 큰 손님을 맞이하거나 행사를 치룰 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뒤에서 땀 흘려 수고하는 사람들의 노고가 없다면 잔치는 초라해 질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영광과 사람들의 칭찬은 대체로 무대 위에 나선 사람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수고하는 모든 ‘마르타’에게도 주님의 축복이 내리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강조하신 것은 마르타가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한다는 것입니다. 그 걱정들 속에는 자신의 수고가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 또 그만큼의 보상에 대한 기대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오신 손님이 기뻐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보상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습니다만 어쨌든 마르타의 마음에는 동생이 얄미워 꾸중 듣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교회 안에서 ‘친교’는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신뢰하고 영적인 동반자의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야말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 중에 하나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 친교 안에 영적인 각성과 진리에 대한 갈망이 없어지거나 약해지면 그 친교는 인간적인 사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낯선 사람들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하기가 쉽습니다. 때문에 교회 안에서의 친교는 전적으로 영적인 교감과 환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점심 식사를 위해서 파출부를 불러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기도와 애정으로 이루는 친교보다는 돈으로 해결하는 매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관광버스가 아주 아름다운 경치 속으로 달려갑니다. 환상적인 기암절벽이 보이고 호수와 맑은 냇물 그리고 꽃과 나무들이 펼쳐진 곳을 지나가고 있는데 승객들은 창밖을 내다 볼 생각은 않고 저마다 자기의 말을 하느라 바쁩니다. 누가 좋은 자리로 갈 것인가, 누가 인기를 더 끌고 관심을 받을 것인가를 계산하면서 눈치를 보고 머리를 굴리느라 아름다운 경치를 그냥 지나친다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꼴이 될 것입니다.


등산할 때 좁은 산길을 오르다보면 앞 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만 할 때가 많습니다. 남성들의 정치, 경제, 골프, 직장 이야기, 여성들의 자녀들의 학교, 학원, 성적, 그리고 미장원, 요리 이야기 등등... 그런 이야기들이 귓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때 새소리 바람 소리가 멀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유행가를 크게 틀어놓고 다니기도 합니다. 좀 작게 해달라고 하면 좋은 노래 여러 사람 같이 듣고 싶어서 그러는데 왜 그러느냐고 오히려 핀잔입니다. 세속의 때를 씻고자 산에 들어온 사람 입장에서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세상 걱정과 먼지들 소음들을 그대로 들고 성전에 드나드는 사람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런지요? 우리에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즉 그리스도와의 상통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7월 17일 연중 16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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