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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전도자의 사명

by 분당교회 2016. 7. 5.

전도자의 사명


‘표면적으로는 신부 몇몇과 과라니 족의 멸종으로 끝났습니다만, 죽은 것은 저 자신이고 그들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말입니다.’ 


영화 미션에서 원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포르투갈 군대와 맞선 신부들을 설득하기 위해 교황청에서 파견되었던 주교가 쓴 보고서입니다. 감동적인 오보에 연주로도 유명한 영화 미션에서 그리스도로부터 부름을 받고, 그리스도부터 보내진 사람의 불굴의 사명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18세기 남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아마존의 오지로 선교사로 파송된 사제 가브리엘은 원주민의 삶 속에 들어가 그들의 평화와 삶의 개선을 위해 헌신합니다. 처음 낯 선 곳에 가까스로 도착한 그는 적대시하는 원주민 앞에서 오보에를 연주하는데, 마치 이리 떼 앞에 있는 양 같은 마음으로 두려움과 긴장감이 밀려들지만 믿음을 잃지 않고 그들과 사귑니다. 뒤로 물러서거나 비굴하지도 않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고 이를 원주민들에게 전함으로서 한 형제가 됩니다. 여기서 전도자란 단순히 교회의 교리와 성경의 말씀을 상대방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서 한 지체가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그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여기에 노예상인으로서 원주민들을 괴롭혔으며 동생을 죽음에 몰아넣은 로드리고가 나타나 온전한 회개를 하고 원주민과 형제의 의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으려고 하는 포르투갈의 침략에 맞서 로드리고는 칼을, 가브리엘은 십자가를 들고 저항하다가 둘 다 총에 맞아 순교합니다. 둘의 방법은 달랐지만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를 이루려고 하는 목표는 같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미션 중 한 장면)


예수께서 72명의 제자를 뽑아서 여러 마을로 보내십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함께 한 곳에서 머물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으로 보내시기 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것 역시 세상에 보내시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인 모두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로서 보내진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질 때 세상은 주님의 미션을 수행하는 장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충만한 악령을 굴복시키고 병자와 같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회복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길 떠나는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돈 주머니도 식량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다른 도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진실한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을 지배하고 자기 생각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평화가 그 사람과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마귀를 굴복시키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원수의 모든 힘을 꺾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다만, 그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행사하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복종시켰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과 마귀의 강한 힘을 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 미션의 주인공들은 그런 확고한 믿음으로 불의와 맞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육신은 죽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은 것입니다.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입니다.


신앙인의 결실은 전도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면서 맺어집니다. 신앙을 통해서 어떤 축복을 받는 것도 감사할 일이지만 평생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웃과 함께 주님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 ‘앞으로 찾아가실’ 마을이나 고장으로 보내셨습니다. 가고 싶은 곳 골라 가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뜻하신 그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실 곳에 미리 보내신 것입니다. 전도자의 사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전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배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소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리스도의 소유로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부르실 때 주저하지 말고, 남에게 미루지 말고, 다음으로 넘기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 응답하기를 소망합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7월 3일 연중 14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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