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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망설이는 사람

by 분당교회 2016. 6. 29.

망설이는 사람


‘뒤 돌아 보지 마라!’는 말은 성서뿐만 아니라 신화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소돔 성이 유황불로 심판을 받을 때,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가족을 살려주면서 “저 소알이라는 땅으로 도망가라. 그러나 가는 길에서 뒤는 돌아보지 말아라.”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러나 무사히 탈출한 일행 중에 롯의 아내가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불타는 소돔 성과 함께 죽어가는 과거를 보다가 자신도 죽었습니다. 왜 뒤를 돌아보았을까요? 


한국의 설화에 ‘장자 못 전설’(장자는 부자를 뜻하는 말)이 있는데 무려 100군데도 넘는 지역의 전설로 전해집니다. 옛날에 아주 인색하고 포악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외양간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스님이 와서 시주를 청하자 쌀 대신 쇠똥을 바랑에 잔뜩 넣어 주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며느리가 몰래 쌀을 퍼서 주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며느리에게 ‘이제 곧 큰 비가 내릴 것이니 지금 곧 뒷산으로 피하되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며느리는 곧 어린아이를 업고 집을 떠나 산을 오르는데 뒤에서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갑작스런 소리에 며느리는 스님의 당부를 잊고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자신이 살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못으로 변했습니다. 이 모습에 놀란 며느리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 등에 업고 있던 어린아이와 함께 그 자리에서 돌로 변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Johann Georg Trautmann(1713-1769) / 롯과 두 딸 그리고 뒤돌아보는 롯의 아내를 그린 그림


이렇게 ‘뒤돌아보지 말라’는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를 구하러 지하 세계에까지 내려갔다가 함께 지상으로 나오는 마지막 순간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아내는 영원히 지하 세계로 빠져들었다는 스토리로도 전해집니다. 창세기와 너무나 흡사한 이야기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전해지고 있는 것이 놀랍습니다. 


생명과 구원 앞에서 ‘뒤돌아보지 마라’는 신적인 당부를 잊고 기어이 뒤를 돌아보는 인간의 갈등과 미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또한 구원의 마지막 순간에 불현 듯 찾아오는 안도감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당부를 잊거나, 의심하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축구에서는 마지막 5분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고, 야구에서는 9회말 2아웃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니 마지막 순간까지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이도 합니다.


예수께서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자격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쟁기를 잡고 밭을 갈 때는 앞만 보고 가야 합니다. 농사일을 하는 아버지한테 오랜만에 아들이 왔습니다. 그래서 쟁기를 잡고 밭을 갈았습니다. 아버지가 일한 밭은 똑바로 갈아졌는데 아들이 갈은 밭은 삐뚤빼뚤 엉망이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떻게 이렇게 똑바로 갈을 수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나무나 큰 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목표를 정해놓고 앞만 보고 소를 몰아 밭을 간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아들은 자주 뒤를 돌아보고 목표도 없었기 때문에 똑바로 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흔들이지 않는 목표를 보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도 필립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은 앞만 보고 달음질 칠 뿐이라고 했습니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의 마음가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과거를 잊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포기할 것이 많고 버려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생나무 가지 찢는 아픔도 이겨내야 합니다. 마음을 굳건히 다져야 합니다. 자꾸 미련과 아쉬움을 마음에 남겨두면 유혹과 시련 앞에서 뒤로 물러 설 가능성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값 비싼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과거에 안주하며 거저 주는 은총을 바라는 ‘값싼 은총’이 아닙니다. 회개 없는 구원이 있을 수 없고, 죄의 고백이 없는 성찬례가 의미가 있을 리 없습니다. 참회 없는 용서는 희망 사항에 불과하며, 십자가 없는 영생과 부활이란 가능하지 않습니다. 희생적인 사랑 없이 참된 행복도 없습니다.


인도의 경전 ‘수타니파타’에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크게 버리는 사람이 크게 얻습니다. 적게 버리는 사람은 적게 얻습니다. 영적인 선택은 우리 자신을 존엄하게 만듭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6월 26일 연중 13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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