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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마음이 있는 곳

by 분당교회 2016. 8. 14.

음이 있는 곳

지난 열흘 동안 스페인을 다녀왔습니다. 피카소와 가우디의 나라, 빛나는 인류 문화 유적과 예술이 보존되어 있는 나라, 이슬람과 유대인 그리고 중세 카톨릭이 우여곡절을 겪은 종교사를 간직한 유별난 곳이어서 비록 짧은 시간의 여행이지만 보고 느낄 것이 많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가기 전부터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된 것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40도를 웃도는 태양열이었고 또 하나는 그 유명한 소매치기였습니다. 온도가 높은 것이 겁도 나긴 했지만 의외로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 상태여서 그런대로 서울보다는 날씨를 극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출발하기 전부터 여러 사람들이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 또는 충고(?)를 해주셨습니다. 실제 당한 사람들 이야기가 넘쳐 났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여행 후기들도 소매치기 경험담들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래서 돈을 여기저기 분산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옷 속에 돈을 감춰두는 복대도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거리를 다닐 때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유적지나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술 작품과 건축물 그리고 공연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항상 사주경계를 해야 하니까요.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혹시나... 하고 의심과 경계로 긴장해야 했습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직접 보는 순간에도 가방을 안고 있었으니까요. 어느 순간, 돈이 주머니에 없으면 차라리 편하게 몰입해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이 여권 등을 소지하고 있는 여행자의 운명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소매치기가 나의 모습을 보았다면 분명 가방을 노렸을 것입니다. 내 마음이 가방에 있었으니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는 말씀을 아마도 소매치기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일행 중 아무도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승리감을 가질 수 있었으니 참 씁쓸합니다.

내 마음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면 재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면 될 것 같습니다. 재물에 대한 태도를 보면 나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인가? 돈인가? 말입니다. 여전히 돈 때문에 내가하는 일이 결정되고, 돈 때문에 내가 갈 곳과 있어야 할 곳이 결정되고, 돈 때문에 이웃과 동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돈 때문에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등한시 한다면 진정한 나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자와 나자로, 레안드로 바사노 작)

공짜로 얻은 책을 잘 읽어 보는 사람 드뭅니다. 또 공짜로 수강하는 강의를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도 흔치 않습니다. 어떤 인문학 강사가 말하기를 한 번은 교회에서 무료 특강을 하는데 여러 사람들이 참석해서 신이 나서 강의를 진행하다가 이내 실망했다고 합니다. 핸드폰 보면서 문자하는 사람, 신문 보는 사람, 건성건성 참석해서 도무지 집중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강사는 반드시 다만 얼마라도 수강료를 받고 강의하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약속을 말씀하시면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축나지 않는 재물 창고를 하늘에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도둑이 들거나 좀 먹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이 하늘나라에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재물에 대한 사용도 그에 맞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훈 작가가 언젠가 강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소위 좀 있는 아줌마들이 백화점에서 수백만원짜리 옷이나 액세서리들을 사면서 시장 좌판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한테는 인색하게 몇 백 원을 깎는다고 말입니다. 아니면 덤으로 한 움큼씩 더 담아 가는 마음에는 이웃에 대한 배려와 나눔의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재물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장의 사는데 필요로 하는 것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보장 때문일 것입니다. 주변에 민폐 끼치지 않고 살려면 재물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다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런데 그 가운데 나눔이 없고 섬김이 없다면 하늘 창고는 텅 비어 있을 것입니다.

경주의 최 부자 집이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형으로 귀감이 되고, 조선 10대 부자 중 하나였던 우당 이회영 선생이 가산을 전부 팔아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과연 재물은 모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풍요와 빈곤이 갈라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왕궁에 살면서도 청빈한 수행자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두막에 살면서도 청빈한 수행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주인으로 사느냐 아니면 소유욕의 하인으로 사느냐이다.’(라즈니쉬)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8월 7일 연중 19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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