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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령을 담는 그룻

by 분당교회 2016. 5. 16.

성령을 담는 그릇


겉으로 보기에는 늘 푸른 듯한 상록수도 때가 되면 잎갈이를 합니다. 사시사철 청정하게 보이는 대숲도 새 죽순이 올라올 무렵이면 겨울을 버티던 묵은 잎이 지고 그 자리에 새 잎이 돋아납니다. 새로운 삶을 위해서 묵은 것을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이 자연의 준엄한 법칙입니다. 묵은 잎이 떨어지고 새 잎이 돋아나는 변화가 없다면 늘 푸른 나무일 수가 없고, 오래 살 수도 없습니다. 


피어있는 것만이 꽃이 아니라 지는 것 또한 꽃입니다. 그래서 꽃은 필 때도 아름다워야 하겠지만 질 때도 고와야 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위해서 그 자리를 내어 주어야 삽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시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 생명에게 낡은 생명이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봄철이 무르익는데도 여전히 낡고 메마른 잎들을 붙들고 있는 나무는 생명이 없는 나무일 것입니다.


성령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고 불가능할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이 없으면 생명은 있을 수 없고 진리의 영이 없으면 깨달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연합이 없으면 참된 영적 교제가 없고, 성령의 열매를 떠나서는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지닐 수 없습니다. 또한 그의 권능에 의지하지 않으면 증언이라는 것도 마른 잎처럼 무의미하게 바람에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호흡이 없는 육체는 주검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이 없는 교회와 신앙인은 하느님 앞에 죽은 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이 오시어 새로운 신앙의 인간, 새로운 신앙공동체가 탄생하는 날입니다. 


(레스타우트, 성령강림, 1732)


예수님의 제자들과 신도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당부하신 대로 예루살렘에 어느 집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아마도 예수께서 다시 오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주여,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디로 가야하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그 길을 알려주십시오. 다시 오셔서 인도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말입니다.


예수께서 안 계신 이 상황에서 이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앞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하느님께 진지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물어보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비웁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지식들, 고집들, 걱정들 다 비웁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입니다. 마음속에, 머릿속에 많은 것이 채워져 있으면 그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옹달샘에서 바가지로 물을 뜨는데 뿌옇게 부유물이 떠다닙니다. 이 상태로는 마시지 못합니다. 그러나 놓고서 가만히 기다리면 다 가라앉으면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이렇게 비우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 내놔라, 저것 내놔라 아우성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운전을 하거나 길을 갈 때 많은 남자들이 자기 스스로 연구해서 갑니다. 그러다가 길을 헤맬 때도 지도책을 보고서 연구합니다. 물어보면 될 것을 묻지 않고 자기 상상대로 가다가 지치면 그때서야 물어봅니다. 자기 고집 꺾고 자존심 버리고 묻지 않으면 길을 헤매기 쉽습니다. 자기 고집대로 살다가 고생고생하고 나서 하느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꼭 이런 식입니다.


신도들이 간절히 기도할 때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불길 같은 성령이 내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서 이 사람들은 깨달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이 사람들을 사로잡자 이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전의 사람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그건 온전히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무늬만 바뀐 것이겠지요. 또는 이전의 사람 위에 성령이 하나 더 얹혀 진 것이겠지요. 이것은 변화가 아닙니다. 성령의 임재로 변화된다는 것은 통째로 바뀌는 것입니다. 근본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가던 길을 바꾸는 것이고, 이전에 살던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입니다. 


감나무에 고욤나무를 접붙인다고 합니다. 그냥 열리는 열매는 작고 맛도 없는 땡감이기 때문입니다. 접붙인 나무의 열매는 크고 달고 맛있습니다. 우리 인간이란 이렇게 하느님의 영과 접붙여야만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 같습니다.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려 흡족하게 적셔지듯이 우리의 영혼의 뜰에도 하느님의 영으로 풍족하게 적셔지기를 기원합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5월 15일 성령강림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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