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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없이 계시는’ 예수님

by 분당교회 2016. 5. 13.

‘없이 계시는’ 예수님


성탄은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강림’의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 곁에 오신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낮은 곳으로 오신 하느님을 외면하고 저 높은 곳만을 바라보는 것을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부활 승천은 땅이 하늘로 올라간 ‘초월’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땅만 쳐다보고 있다면 초월자이고 절대자이신 하느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 속에 제한되어 있는 하느님만을 찾는다면 우상을 찾는 것이고 영원하신 궁극적 실재를 만나기를 거부하는 ‘태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다고 했습니다. 이 승천의 사건을 우리는 예수께서 우주 공간 어디로 날아가셨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주개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늘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신앙에서의 하늘은 이 땅을 초월한 세계, 영원한 나라, 절대자이신 하느님이 통치하시는 세계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이웃들이 영원히 편히 쉬는 그 곳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하늘은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 속에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셨고 다시 오실 것이라는 우리의 신앙고백은 예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하늘로 오르신 것은 저 하늘이 항상 우리의 머리 위에 있듯이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실패와 좌절의 눈물을 흘릴 때, 힘들고 지쳐서 주저앉았을 때 저 하늘은 항상 우리의 등을 감싸고 있습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 마음이 상하고, 다투고, 고민하고, 미워할 때도 가장 큰 하늘은 거울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바라보며 한 점 부끄러움이 있는지, 얼마나 작은 일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우리들의 곁에 항상 계십니다. 없는 것 같으나 있는, 있는 것 같으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하늘처럼 예수께서 계십니다. 



빛과 어둠이 둘 인 것 같지만 연결되어 있는 하나이며, 또 하나이지만 둘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오묘하게 예수께서 계십니다. 영원과 현실, 초월과 강림이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듯이 예수께서는 ‘없이 계십니다.’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천국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동경하고 찾아가야 할 영원의 세계로 오라고 초대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비극은 궁극적이지 않은 것을 궁극적으로 여기고 숭배할 때 발생합니다. ‘이념’이 인간을 구원할 것처럼 여기면서 극단적으로 이웃을 적으로 만들고 분열시키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물질에 대한 숭배는 가혹한 신앙체계를 만들었습니다. 물신이 지배하는 현실은 인간과 세계의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강과 산과 나무들도, 문화와 예술도, 그리고 영혼까지도 상품화시켰고 상품이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거침없이 퇴출 또는 파문됩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분자화 되어 이웃과 단절된 삶을 살아갑니다. 우울증이나 외로움이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약자들에 대한 경멸과 무자비한 현실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보통 유언 속에는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담기 마련입니다. 또한 유언을 듣는 사람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반드시 실행하기를 바라는 것은 남깁니다. 예수께서는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예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셨다는 것, 그리고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온 세계에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증인은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유불리를 따져 증언하면 큰 혼란이 옵니다. 임진왜란 직전에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온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자기가 속한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증언을 해서 전쟁에 대비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때문에 증인이 증언을 할 때는 엄청난 시련의 위험 앞에서도 양심에 따라서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 증인이 되는 것은 곧 순교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예수의 구원 사역이 지금도 우리에게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희망하고 성취해야 할 것은 하느님 나라이며 이를 위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몸소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은 속세에 살지만 속세의 때를 묻히지 않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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