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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by 분당교회 2016. 4. 25.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계명이란 신적인 권위로 내려진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어떤 주장이나 학설처럼 이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나 계명을 신성하게 여기고 지켜야 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 계명을 어떻게 지키는 것이 더욱 좋은 일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 머물고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숙제가 남습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절대적인 명령이 본래의 정신과 목적과는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고 불순종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오히려 증오와 복수를 결과적인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경우입니다. 아마도 소수의 악을 죽임으로서 다수의 평화와 행복을 실현한다는 공리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인간의 생각이 우선되어서 계명이 훼손되거나 왜곡되는 것만큼은 피하는 것이 신앙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새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실상 그리 새로운 것 같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께서는 새로운 계명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구약 율법은 614개 조항인데 이것을 열 개로 요약한 것이 10계명이라고 합니다. 다시 이것을 두 마디로 요약하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고,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말씀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다시 이것을 한 마디로 축소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서의 모든 계명의 핵심은 바로 ‘사랑’이고 이것이 바로 모든 가르침의 열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서로 사랑’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또한 서로 사랑하면 모든 인간이 추구하고 있는 행복도 가까이 오게 될 것입니다. 또 거꾸로 우리 삶의 많은 문제는 사랑이 없어서 생겨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물질과 재산은 풍성하지만 사랑이 없이 냉랭한 가정에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가 물질적인 경제 성장은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자랑할 수 있지만 비정하고 끔직한 살인 사건이 빈번하고, 자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리고 아기 낳기를 두려워한다면 결코 행복한 나라라고 볼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우정은 비오는 날 우산을 빌려주는 것보다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하는 신영복 선생의 말씀처럼 고난의 찬비가 내리는 인생길에서 그 길을 함께 가는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 과정 자체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는 ‘고난이 왜 오는가?’가 아니고 ‘우리는 왜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가?’일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벽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념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 빈부 격차에 따른 기득권층과 소외된 사람들... 벽이 많고 또 높다고 분석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실제 그것을 허물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 벽을 허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 벽을 허물지 못하고 새로운 벽을 쌓는 것은 사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요? 창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웃이 아닌 나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 또는 내가 무엇인가 거래해야 하는 사람, 서로 믿음을 주고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속에서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사랑이 고갈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 이것은 ‘이방인들도’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예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조건을 다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요? 길 가던 중 만나는 병자들을 고치신 사랑, 죄인으로 버림받고 사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사랑, 굶주린 사람들을 보고 측은히 보시는 사랑,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강도만난 이웃을 돌보는 사랑, 돌아온 탕자를 용서하며 환영하는 아버지의 사랑,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며 십자가에 달리신 사랑... 무수히 많은 예를 성서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나누는 빵과 포도주는 그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모두 조건과 보상 없이 먼저 하는 사랑입니다.


예수의 사랑을 몸소 실천했다고 온 세상 사람들이 성녀로 추앙하는 마더 데레사는 이런 명언들을 남겼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자신의 존엄성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봅니다. 내가 나환자의 상처를 씻어줄 때 하느님 바로 그분을 돌보아드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경험입니까?’ ‘가난한 이들이 절실히 바라는 것은 의식주가 아니라 온정입니다. 그들은 늘 가난으로 인한 버림의 상채에 괴로워합니다.’ ‘오늘날 가장 큰 병은 결핵이나 나병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병은 약으로 고칠 수 있지만 고독, 절망, 무기력 같은 정신적인 병은 사랑으로 고쳐야 합니다. 빵 한 조각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사랑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은 더 많습니다.’

‘내가 삶에서 발견한 최대의 모순은 상처 입을 각오로 사랑을 하면 상처는 없고 사랑만 깊어진다는 것이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4월 24일 부활 5주일, 교회설립 17주년,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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