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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용신부169

약은 청지기의 교훈 약은 청지기의 교훈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9월 15일 연중 24주일 설교 말씀) 소설 ‘도가니’에서 장애인들이 학대받는 현실을 감추려는 불의한 세력들의 엄청난 협잡과 음모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작가 공지영은 이렇게 씁니다.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 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 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 2013. 9. 23.
값싼 은총과 십자가 값싼 은총과 십자가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9월 8일 연중 23주일 설교 말씀) 20대 초반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천재 신학자 디트리히트 본회퍼 목사는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에 처형되었습니다. 그는 교회의 타락과 신앙의 변질을 보면서 ‘값싼 은총’을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값싼 은총은 그야말로 싸구려 또는 떨이로 취급하는 상품처럼 여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싸구려이기 때문에 그것을 산 사람도 함부로 사용하거나 존중하지 않습니다. 값싼 은총은 하느님에 근거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써 십자가 없는 은총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신 것은 세상에 오셔서 성육신 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비싼 값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값비싼 은총.. 2013. 9. 10.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을 지르러 왔다!(대한성공회 분당교회 8월 18일 연중 20주일 설교 말씀) 우리는 평화와 사랑의 예수님이 늘 격려와 위로를 주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복음서에는 쉽게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말씀을 하신 대목을 만날 때마다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루가복음 12장에는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비슷한 마태복음에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적혀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족 간에도 심한 대립이 일어날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반대를 한다니.... 2013. 8. 19.
하나님께 인색한 사람의 종말 하나님께 인색한 사람의 종말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8월 4일 연중 18주일 설교 말씀) 사람은 모두 다 행복을 위해서 삽니다. 그런데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만드는 것일까요? 쟁취하는 것일까요? 법정 스님은 밖에서 오는 행복도 있겠지만 안에서 향기처럼,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행복의 근원을 물질에서, 그것도 소유에서 찾는 경향이 많습니다. 어느 호스피스 간호사가 이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처음 도와준 환자는 중년부인이었는데 그 부인은 젊은 시절부터 세계일주가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벌어다준 적은 월급 중에 일부를 저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돈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쓰지 않을 결심이었습니다. 사회봉사단체에서 버려진 사람,.. 2013. 8. 5.
행복을 위한 기도 행복을 위한 기도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7월 28일 연중 17주일 설교 말씀) “한 사람이 신께 빌었다. 쌀 항아리를 채워주시고, 과일 광주리를 채워주시고, 고기 상자를 채워주시라고.... 하도 졸라대는 통에 신은 허락해주고 말았다. 그런데 쌀 항아리와 과일 광주리와 고기 상자를 주워 담으면 담은 대로 커지게끔 하였다. 그 사람이 쌀 항아리 앞에 가면 쌀이 저절로 생겼다. 쌀 항아리에 쌀을 퍼 담는 그는 신이 났다 한참 쌀을 담다 보면 쌀 항아리는 커지는데, 고기 상자가 그대로인 게 그는 불만이었다. 이번에는 고기 상자 앞에 섰다. 이내 고기가 저절로 생겼다. 고기를 집어넣는 대로 고기 상자 또한 커졌다. 허나 과일 광주리가 그대로인 게 그는 또 불만이었다. 그는 다시 과일 광주리 앞으로 갔다.... 그.. 2013. 7. 29.
필요한 것 한 가지 필요한 것 한 가지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7월 21일 연중 16주일 설교 말씀) 처음 목회지를 농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성직자가 상주한 적이 없었던 교회라 사택이 있을 리 만무했던 조그만 교회였습니다. 총각이었던 때라 어느 교우님 댁 문간방에 신세를 지고 있었는데 어머니들이 가스렌지랑 냄비와 밥그릇 등을 챙겨주시고 성미 모은 것을 가져와서 밥 지어 먹으라 했습니다. 가끔 밥을 해 먹긴 했는데, 어느 날 문득 꾀가 나서 교우님들과 대화도 할 겸 가정방문을 가기로 했습니다. 사는 것은 어떠하고 무슨 애환이 있는지, 무슨 기도의 제목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식사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 농촌에서는 누가 와서 함께 밥 먹는 것 정도는 별로 부담.. 2013. 7. 23.
파송된 자 파송된 자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7월 7일 연중 14주일 설교 말씀) 우리는 감사성찬례 마지막에 파송예식을 합니다. ‘나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합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거의 습관적으로 하는 예배의 마무리로 받아들여져서 성당 문을 나오면서 바로 잊기 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신성한 예배에서 그것도 자신의 이름도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을 쉽게 잊는 것에 무감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하자면 우리는 한 주간 일상생활을 이 한 마디로 시작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즉, 우리 교인들은 한 주간 동안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러 성당 문을 나서서 세상으로 파송된 자들입니다. 때문에 우리 각자는 나름대로 파송된 사람으로서 사명감과 목표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 2013. 7. 6.
뒤 돌아보지 마라! 뒤 돌아보지 마라!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6월 30일 연중 13주일 설교 말씀) 성서에는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창세기에서 소돔성이 유황불로 심판을 받을 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조카 롯의 가족을 살려 주십니다. 그대신 “저 소알이라는 땅으로 도망가라. 그러나 가는 길에서 뒤는 돌아보지 말아라.”라고 당부 하십니다. 그러나 그만 롯의 아내가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 뒤를 돌아보았을까요? 그는 불타는 소돔성과 함께 죽어가는 과거를 보다가 자신도 죽었습니다. 미련이 남았고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불비를 피 해 탈출을 했지만 마음으로 떠나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오르페우스가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죽자 천신만고 끝에 죽음의 강을 건너.. 2013. 7. 6.
한 여인의 눈물 한 여인의 눈물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6월 16일 연중 11주일 설교 말씀)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얼마나 흘렸는지 예수님의 말을 적셨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토록 서러워서, 또는 억울해서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은 보통의 눈물이 아님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적어도 그 눈물은 거짓 눈물이 아님을 우리는 금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웃음은 억지로 웃어 보일 수는 있어도 눈물은 쉽게 짜내지지 않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복받쳐 오르는 감격이나 슬픔, 진실이 없다면 그렇게 철철 흐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악어는 그 큰 입으로 먹이를 삼키고 나서 찔끔.. 2013. 6. 17.
그러나 그러나(대한성공회 분당교회 4월 14일 부활 3주일 설교 말씀)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만의 책을 한 페이지씩 평생을 두고 써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한 번 쓰면 다시는 수정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한 번 지나간 삶을 돌이켜서 다시 고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아무리 잘못 써도 찢어 없앨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끄러운 흉과 허물이라도, 아무리 괴로운 사건이라도 한 번 지나간 일을 지우거나 없앨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엄숙한 삶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끄럽고 괴로운 내용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끝까지 간다고 생각하면 정말 고통스러운 일.. 2013. 4. 15.
빈무덤에남은것 빈무덤에 남은 것(2013년 3월 31일 부활절 설교 말씀)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따스한 봄바람이 겨울의 대지를 녹이고 여린 새싹들과 수줍은 듯이 얼굴을 내미는 봄꽃들의 웃음 속에서 부활절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부활절은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계절의 변화를 따라 기계적으로 맞이하 는 날이 아닙니다. 부활은 아주 특별한 주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날입니다. 때문에 준 비된사람,죽음과삶의의미를귀중히여기는사람,새로운삶을살겠다고다짐한사 람, 묵은 생활을 떨쳐버리고 하느님께서 제시하신 은총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 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축제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희망을 거는 선 한 백성들이 진정으로 기뻐할 승리의 날입니다. 성탄을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는 사건이라고 한다면, 부활은 땅이 하늘로 .. 2013. 3. 31.
거룩한 낭비 거룩한 낭비(2013년 3월 17일 사순 5주일 설교 말씀) 만찬 중에 예수님 곁으로 마리아가 다가와서 매우 값진 나르드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렸습니다. 유다는 ‘이 향유를 팔면 1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돈을 받을 것이고 이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텐데 이게 무슨 짓인가?’ 하며 책망합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마리아의 행위를 두둔하며 ‘이것은 내 장례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리아가 저지른 막대한 낭비를 보고 분개한 유다와 제자들을 누가 감히 비난 할 수 있을까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 줄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나 복지 행정을 맡은 공무원 같으면 절대 유다의 입장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2013.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