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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용신부169

어톤먼트(atonement, 속죄) 어톤먼트(atonement, 속죄)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4월 13일 고난주일 설교 말씀) 화려하게 피었던 봄꽃들이 바람에 휘날립니다. 일제히 피어나고 일제히 사라지는 꽃들이 조금은 허망하게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꽃이 사라진 나뭇가지에는 다시 열매를 맺을 꿈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 꽃이 그대로 남아있는다면 아마도 열매에 대한 꿈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 자연의 준엄한 법칙 속에서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고난을 묵상하고 그 고난에 동참하고자 결단하는 고난주일입니다. 마태오가 전하는 수난복음은 은전 서른 닢으로 예수를 배반하는 유다, 그리고 이어지는 최후의 만찬, 예수를 절대 배반하지 않으리라는 베드로의 장담, 예수께서 외.. 2014. 4. 21.
라자로야, 나오너라! 라자로야, 나오너라!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4월 6일 사순 5주일 설교 말씀) 화사한 봄꽃들이 일제히 피었습니다. 저 남쪽부터 서서히 올라오면서 피는 것도 아니고, 이 꽃이 피고지면 저 꽃이 피고... 이런 순서를 완전히 무시하고 전국적 동시다발로 피었습니다. 언제 꽃이 피나... 하는 기다림도, 새록새록 살며시 돋아나는 그 신비로운 모습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보면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는 마음도 무색하게 전국적인 꽃들의 반란이 일어난 듯합니다. 인간의 지배에 더 이상 못살겠다는 아우성 같아서 현란하게 피었다 지는 꽃들이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집니다.꽃들은 언제 죽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길 위에 소복이 쌓인 하얀 꽃잎들을 보면서, 저 꽃들은 죽었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 밝은 미소와 고운 빛.. 2014. 4. 17.
볼 수 있는 사람 볼 수 있는 사람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30일 사순 4주일 설교 말씀)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이 되었을 때 뇌척수막염으로 추정되는 병을 앓고 나서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소경이며 귀머거리 그리고 벙어리라는 3중의 장애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설리반 선생의 평생에 걸친 눈물겨운 사랑과 교육으로 그는 당대의 문필가이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아직도 그가 남긴 일생과 흔적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도 하고 영적인 눈을 뜨게 합니다. 그가 남긴 ‘3일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시켜준 나의 선생님 에미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내 손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녀의 인자.. 2014. 4. 4.
황홀한 재생 황홀한 재생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23일 사순 3주일 설교 말씀) 사람들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차별’과 ‘냉대’는 영혼을 파괴하는 무서운 폭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둑이나 강도를 당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정신병에 걸리거나 자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차별과 냉대를 받으면 밤잠을 못 자면서 괴로워하며 좌절하고 극단적으로 인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소위 ‘왕따’로 인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간은 역시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느끼도록 창조된 모양입니다. 사마리아는 일찍이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멸망하여 통치를 받았습니다. 앗시리아는 사마리아를 통치하면서 혼혈정책을 썼습니다.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가.. 2014. 3. 25.
숨어있는 제자 숨어있는 제자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16일 사순 2주일 설교 말씀) 예수님을 추종하던 사람들 중에 니고데모는 매우 특이한 사람입니다. 그는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따라다니지는 않았습니다. 약간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주시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두고 ‘숨어있는 제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는 예수님한테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바리사이파 중의 한 사람이며 당시의 의회의원인 고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대부분 당시 사회의 밑바닥 층 사람들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니고데모는 그들과 어울리기에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리마태아 요셉과 예수님의 장례를 치룬 인물입니다.(요한 19:39)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릴 때 제자들은 다들 도망갔습니.. 2014. 3. 17.
평범함의 유혹 평범함의 유혹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9일 사순 1주일 설교 말씀)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이자 봄이 막 움트는 시기에 시작되는 사순절은 봄꽃이 찬란하게 피는 부활절로 마감하게 됩니다. 언 땅이 녹고 여린 새싹이 돋아나는 이 계절은 농부가 파종을 위해서 논밭을 갈아엎는 시기입니다. 깊게 갈아엎을수록 땅은 부드러워져 씨앗은 뿌리내리기가 좋습니다. 사순절은 우리의 영혼의 밭을 갈아엎는 계절입니다. 굳어있는 영혼을 하늘의 씨앗이 뿌리내리기 좋게 만들어가는 시기입니다. 이런 계절적인 변화가 교회의 절기에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 땅은 축복받았음에 틀림없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사십 주야를 단식하시며 수행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하늘의 뜻과 영으로 채우는 수행 과정입니다.. 2014. 3. 10.
하늘에서 지혜로운 이 하늘에서 지혜로운 이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2일 연중 8주일 설교 말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에 ‘유로지비’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성스러운 바보, 또는 광신도를 뜻하기도 하는 이 말은 죽은 나무에 여러 해 동안 물을 주어 싹이 나게 했다는 수도사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바보이지만 신에게는 성스러운 사람을 말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주로 세상에서는 똑똑하다는 사람들에 대비되는 인물로서 ‘유로지비’를 등장시켰습니다. 때로는 ‘백치’로, 조시마 장로처럼 세상 많은 사람들이 성자로서 존경하는 인물로서(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고 쏘냐(죄와 벌)와 같은 인물로서 나타냈습니다. 쏘냐는 주정뱅이 아버지와 병든 계모, 그리고 동생들을 위해서 몸을 파는 창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014. 3. 5.
복수의 순환, 사랑의 순환 복수의 순환, 사랑의 순환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2월 23일 연중 7주일 설교 말씀) 팔레스타인 하마스에 의해 이스라엘 군인 두 명이 포로로 잡히자 이스라엘 군은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을 무차별 폭격했습니다. 한 소년의 집이 박살나고 가족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오른팔을 잃었습니다. 병원으로 실려 간 소년은 치료도, 식사도 거부합니다. 그러자 노르웨이에서 자원 봉사 온 의사가 말합니다. “얘야 왼 손으로도 총은 쏠 수 있단다...” 이 말을 들은 소년은 다시 힘을 내어 치료에 나섰습니다. 이 영상을 보면서 이 소년의 미래는 어떻게 될는지 매우 심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왼 손으로도 총을 쏠 수가 없으면 자살 폭탄 테러에 나서지나 않을지... 그리고 그러면 안 된다고 감히 말을 할 수 있을.. 2014. 3. 5.
크게 버리고 크게 얻기 크게 버리고 크게 얻기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2월 16일 연중 6주일 설교 말씀) 짙은 안개가 호숫가를 가득 메운 어느 여름날. 나룻배 하나가 안개를 헤치며 가고 있습니다. 고요한 호수를 조용히 가르는데 안개 저 편에서 다른 배 한 척이 얼핏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공은 외쳤습니다. ‘여보시오. 게 누구요?’ 그러나 상대편 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배는 점점 다가오는데 상대편 배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공은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보시오! 배가 부딪히려 하지 않소?’ 그래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공은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욕설을 내뱉으면서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배가 부딪히잖소?’라고 외칩니다. 그래도 대답 없는 배가 점점 가까이 오자 사공은 장대.. 2014. 2. 21.
빛과 소금 빛과 소금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2월 9일 연중 5주일 설교 말씀)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이라는 시인이 쓴 ‘연탄 한 장’이라는 시입니다. 사랑과 열정으로 남김없이 자신을 태우고 난 뒤에 허무한 재로 남는 것이 두려워서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이 되지 못했다는 말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서 이러저러한 핑계.. 2014. 2. 16.
촛볼의 영성 촛불의 영성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2월 2일 주의 봉헌 축일 설교 말씀) ‘한 가닥의 촛불이 우주의 어둠을 삼킨다!’고 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에 한 가닥의 촛불만 있어도 그 어둠은 사라집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꺼져버리는 연약한 불꽃이지만 한 가닥의 촛불만 있어도 사람은 희망을 보게 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가난에 허덕이고 있을 때 쓴 편지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돈이 없어 여관비를 내지 못하자 주인은 식사와 차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여관 주인에게 화가 났는데 그것은 식사와 난방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양초를 주지 않았다는 것에 그는 몹시도 화가 났던 것입니다. 촛불을 밝힐 수가 없어서 책을 읽을 수도 없고 글을 쓸 수도 없다는 것이 그에게는 절망적이었.. 2014. 2. 2.
제자들의 소명의식 제자들의 소명의식(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월 26일 연중 3주일 설교 말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그의 역사를 이루실 때는 항상 대신할 일꾼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위대한 응답이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사무엘이 그랬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이 때 이사야는 응답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이처럼 성서에서 나타나는 하느님 나라의 행진은 바로 부르심과 응답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또한 제자들을 부르셔서 하느님 나라의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처음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어부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 2014.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