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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평범함의 유혹

by 분당교회 2014. 3. 10.

평범함의 유혹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3월 9일 사순 1주일 설교 말씀)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이자 봄이 막 움트는 시기에 시작되는 사순절은 봄꽃이 찬란하게 피는 부활절로 마감하게 됩니다. 언 땅이 녹고 여린 새싹이 돋아나는 이 계절은 농부가 파종을 위해서 논밭을 갈아엎는 시기입니다. 깊게 갈아엎을수록 땅은 부드러워져 씨앗은 뿌리내리기가 좋습니다. 사순절은 우리의 영혼의 밭을 갈아엎는 계절입니다. 굳어있는 영혼을 하늘의 씨앗이 뿌리내리기 좋게 만들어가는 시기입니다. 이런 계절적인 변화가 교회의 절기에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 땅은 축복받았음에 틀림없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사십 주야를 단식하시며 수행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하늘의 뜻과 영으로 채우는 수행 과정입니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얼마나 시장하고 목마르셨을까? 이런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셨을까? 이 광야의 수행과정을 상상해 볼 때마다 예수께서 이루신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복음서에서는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는 과정이 바로 수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말합니다.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서 하느님과 일치를 경험하는 영신 수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복음서에서는 악마의 유혹과 대결하는 장면을 가장 극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극기나 자학이 그리스도의 표징이 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금식기도나 자학적인 생활 같은 것을 자기 신앙의 수준을 나타내는 표시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세상에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위선적인 모습입니다. 악마의 유혹은 나약한 인간의 숙명처럼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아니 어쩌면 유혹은 인간 안에 잠재되어 있는 본성이라 해야 옳을 것입니다.

(광야의 유혹, 후안 데 플란데스 /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예수께서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는 과정을 두고서 여러 문인들이 글을 써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이 나오자마자 세계 기독교계는 경악을 했습니다. 예수의 인간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이 책을 로마 교황청에서는 금서로 지정했고, 그리스 정교회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파문했습니다. 개신교회는 악마의 책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기독교계의 격렬한 반대에 봉착해 이 영화를 15년이나 지나서야 상영될 수가 있었습니다.

루가 복음서에서는 특이하게도 “악마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유혹해 본 끝에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를 떠나갔다.”(루가 4: 13)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물질과 권세와 명예에 대한 유혹 말고 다른 유혹이 하나 더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상상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꽂혔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기진맥진 해 있을 때 예수께서는 잠시 혼절을 합니다. 환상 속에서 수호천사가 나타나서 이제 그만 십자가에서 내려가 평범한 삶을 살라고 합니다. 하늘의 천사도 인간의 평범한 삶을 동경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와 사랑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평범하게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이것이 악마의 유혹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직도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퍼부었지만 카잔차키스의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생각할 때 그냥 표면적으로 나타난 것만을 가지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이야말로 가장 큰 유혹이라는 것입니다. 이 도전에 직면한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신앙인들의 영적인 싸움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평범함 속에서 잠들 수 있습니다. 마치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를 땅에 깊이 묻어놓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랬던 종처럼 ‘평범’이라는 울타리에 숨고 싶은 유혹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웃이 비참하게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 벌어져도 놀라지 않고, 정의가 훼손되어도 분노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지구가 파탄 날 것이라는 예언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지금 평범하면 되니까요.

장수하신 분들의 잔치에 참여하거나 초상집에 조문을 가서 영정을 바라볼 때마다 이 세상에 평범하게 살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합니다. 어쩌면 ‘보통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특별한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신앙 수련 속에서 유혹과 싸우는 과정은 우리의 하늘 형상을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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