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

뒤 돌아보지 마라!

by 푸드라이터 2013. 7. 6.

뒤 돌아보지 마라!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6월 30일 연중 13주일 설교 말씀)


성서에는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창세기에서 소돔성이 유황불로 심판을 받을 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조카 롯의 가족을 살려 주십니다. 그대신 “저 소알이라는 땅으로 도망가라. 그러나 가는 길에서 뒤는 돌아보지 말아라.”라고 당부 하십니다. 그러나 그만 롯의 아내가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 뒤를 돌아보았을까요? 그는 불타는 소돔성과 함께 죽어가는 과거를 보다가 자신도 죽었습니다. 미련이 남았고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불비를 피 해 탈출을 했지만 마음으로 떠나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오르페우스가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죽자 천신만고 끝에 죽음의 강을 건너 구하러 갑니다. 그러나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에게 조건을 달아 지하세계를 나가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지하세계를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조건입니다. 기쁜 마음에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와 열심히 달려 나갔습니다. 마침내 멀리서 빛이 보였고 이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생각도 들고 아내가 잘 따라오는지도 궁금해서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을 때 에우리디케는 저 멀리 사라지고 맙니다.


이렇게 뒤돌아보지 말라는 이야기는 성서는 물론이고 신화 또는 한국 전설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인류의 보편적인 의식 속에 있는 경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원의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가는데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Johann Georg Trautmann(1713-1769) / 롯과 두 딸 그리고 뒤돌아보는 롯의 아내를 그린 그림 


예수께서도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떠나면서 자꾸 과거에 미련을 두고 집착을 하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은 진리를 찾아 끝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과정입니다.


낡은 과거의 둥지에 머물면서 더 많은 것을 채우려고 하는 것은 참된 신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새 길을 갈 줄 모른다면, 그리고 과거의 자기로부터 변화된 모습이 없다면 믿음 생활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신앙의 길은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는 무엇을 새롭게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뒤를 따라 하느님 나라로 향해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거듭거듭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살 수있어야 합니다. 낡은 인습과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서 창조적으로 살지 못하면 정체되고 고여서쉬 죽어 버리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끝없이 길을 떠나는 자신의 상황을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망설입니다. 그동안 머물렀던 생활의 굴레를 쉽게 버리고 떠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동안 누려왔고 안주했던 자리를 포기하자니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더욱이 가족과 헤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주십시오.’,또 어떤 사람은 ‘먼저 집에 가서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 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족과의 작별 인사까지도 거절하시는 예수님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가족의 해체를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의 진리 앞에 가족은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가족관계 역시 무제한의 관계도 아니고 우리의 최종적인 목적을 위해 신성시될 수 없는 유한한 것입니다.우리의 가족관계가 더욱 신성화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로 거듭날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족관계를 보다 높은 질서의 관계, 즉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서로의 영적인 성장과 자아 성취를 위한 순례의 동반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말씀/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0) 2013.07.15
파송된 자  (0) 2013.07.06
악령  (0) 2013.06.24
한 여인의 눈물  (0) 2013.06.17
젊은이여 일어나라!  (0) 2013.06.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