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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by 푸드라이터 2013. 7. 15.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7월 14일 연중 15주일 설교 말씀)


1964년 뉴욕의 퀸즈 지역 어느 아파트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새벽 3시쯤 한 여성이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중에 수상한 남자를 발견하고는 도망갔으나 그 남자는 그 여인의 등에 칼을 찔렀습니다. 이 여인은 비명을 지르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아파트 이곳저곳에서 불이 켜졌습니다. 창문을 여는 소리도 들렸지만 이내 불이 하나 둘씩 꺼졌습니다. 범인은 달아났다가 창문들에 불이 꺼진 것을 보고 다시 돌아와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50분 동안 벌어진 살인 사건에 불을 켜고 본 사람들은 38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중 어느 한 사람도 신고를 하거나 이 여인을 도우러 내려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비정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 사건을 조사한 심리학자들은 이를 ‘방관자 효과’라고 했습니다. 즉 증인이 여러 명일 경우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도와주겠지...’하는 심리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비행이나 대낮 길거리에서 폭행 사건을 보고도 외면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귀찮기도 하거니와 자칫 잘못 사건에 연루되면 복잡한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하는 까닭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생활보다는 생존이 최우선 가치로 되어있는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이웃의 불행과 고통은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그런 불행한 사건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이웃관계를 한번쯤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한국 비행기의 충돌 사건이 벌어져서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어느 방송에서 사망한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해서 중국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고 합니다. 희생자와 가족들의 아픔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는 망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 발언을 한 사람은 관계에 따라, 또는 소속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다르게 생각되는 모양입니다.


(빈센트 반 고호, 선한 사마리아인 1890)


예수께서는 사랑에는 차별이 없고 경계가 없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모든 인류가 이웃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앗시리아의 혼혈정책의 지배를 받았던 사마리아 사람을 짐승보다 못하게 생각했습니다. 극심한 차별과 냉대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해 예수께서는 차별 없이 은총과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율법학자가 자신이 의로운 사람임을 과시하려고 이웃이 누구인가를 질문했을 때 예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한적한 길에서 강도를 만나 반죽음 상태에 이른 사람을 사제와 레위인은 그냥 지나쳤습니다. 가까이 가지도 않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가다가 그의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를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음날 자기 돈까지 내어 주면서 여관 주인에게 잘 보살펴 주라고 당부합니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주겠다는 약속까지 합니다. 이 사람인들 왜 할 일이 없고 바쁘지 않았겠습니까? 자신을 냉대하고 차별하는 유다인들에 대해 미운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이웃’에는 경계가 없고 사랑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행위를 통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굳이 누가 이웃인가를 따져 물을 까닭이 없습니다. 불행과 고통과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을 보고서 방관하지 않는 것이 이웃된 사람의 도리입니다. 이웃 사랑은 겉으로 규정해서 실천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진심이 담긴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는 우리 마음에 사람을 구분 짓고 경계를 만드는 선입관과 편견부터 뿌리 채 뽑아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증오와 차별의식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진실한 이웃이 되어 줄 수가 없습니다.

루가복음에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근본적인 문제를 구하는 질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웃 사랑 문제는 주저하고 망설일 것이 아니라 나의 구원을 위한 답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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