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것 한 가지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7월 21일 연중 16주일 설교 말씀)
처음 목회지를 농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성직자가 상주한 적이 없었던 교회라 사택이 있을 리 만무했던 조그만 교회였습니다. 총각이었던 때라 어느 교우님 댁 문간방에 신세를 지고 있었는데 어머니들이 가스렌지랑 냄비와 밥그릇 등을 챙겨주시고 성미 모은 것을 가져와서 밥 지어 먹으라 했습니다. 가끔 밥을 해 먹긴 했는데, 어느 날 문득 꾀가 나서 교우님들과 대화도 할 겸 가정방문을 가기로 했습니다. 사는 것은 어떠하고 무슨 애환이 있는지, 무슨 기도의 제목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식사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 농촌에서는 누가 와서 함께 밥 먹는 것 정도는 별로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때라 교우님들도 흔쾌히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은 제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때가 5월 중 하순 농번기라 바깥양반은 새벽부터 논에 가서 일하고 있고, 안주인은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며 부산을 떱니다. 아이들 있어서 ‘이리 좀 와봐라’하고 말을 붙이면 수줍은 듯 나비처럼 바깥으로 살짝 나가버립니다. 이래저래 혼자 우두커니 있다가 밥상이 들어옵니다. 상에는 밥이 한 그릇 밖에 없습니다. ‘많이 드세요!’하고는 부엌으로 나가버리니 혼자서 밥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아니었는데.... 몇 집을 그렇게 다니다가는 생각을 바꾸어 아예 논 심방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바지 걷고 논에 들어가 같이 모내고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는 가운데 생전 처음 해보는 농촌 생활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수줍어하면서 밥상을 준비하시던 분들의 그 소박하고 애틋한 마음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는데 마르타라는 여인이 예수님 일행을 자기 집에 모셔 들였습니다. 아마 극구 자기 집을 방문해 달라고 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그런데 마르타는 예수님을 방에 모셔 놓고는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부산을 떱니다. ‘경황이 없을’ 정도로 시중드는 일에 열중하다가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언니인 나는 이렇게 정신없이 손님 접대를 위해 바쁘게 일하는데 동생인 마리아는 가만히 앉아서 예수님 앞에서 말씀만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와서 ‘동생이 일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그냥 두십니까? 좀 거들라고 꾸짖어 주세요.’하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면서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타이르십니다.
(마리아와 마르타 집에 계신 그리스도, 1618년, 디에고 벨라스케즈)
예수께서는 어느 집에 머물든지 그 가정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시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꼭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목적이요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나 근사한 음식으로 접대를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복음의 기쁨이 그 가정 안에 충만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성직자와 교우, 교우와 교우와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시해야 할 것은 바로 ‘복음의 나눔’이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친교입니다. 그것이 빠지게 되면 그저 편한 사람들끼리의 사교 모임이 되기 십상입니다.
가끔 교우들 중에 ‘모르는 것이 없는 교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조금 이야기를 하다보면 기가 막히게 잘 압니다. 어느 성직자는 옷을 어떻게 입고,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무슨 습관이 있다고 하는 것까지 소소히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한 술 더 떠서 어느 교인이 어쩌고저쩌고, 교회 운영과 살림살이가 어떻다느니, 어느 성직자, 어느 교인이 어째서 어디로 갔다느니 하는 일 등등 도대체 모르는 것이 없어 대화하기가 난감하게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교인들은 대체로 ‘아는 것도’ 없습니다. 구원에 가장 중요한 성경의 말씀과 기도생활에 대해서 그리고 전도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성직자의 사생활이나 교회정치 같은 것은 사실 모르는 것이 훨씬 은혜로울 수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다 같이 하느님 나라와 그 의의 실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머지 것들은 다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 마리아가 택한 참 좋은 몫.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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