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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악령

by 푸드라이터 2013. 6. 24.

악령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6월 23일 연중 12주일 설교 말씀)
 


악령 들린 사람은 오래 전부터 옷을 걸치지 않고 집 없이 무덤들 사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보자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왜 저를 간섭하십니까? 제발 저를 괴롭히지 마십시오.’하고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악령 들린 사람은 수치를 모릅니다. 옷을 입지 않은 벌거숭이로 쇠사슬과 쇠고랑을 부수어 버리고 광야로 뛰쳐나가곤 합니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곳보다는 죽음과 있는 것이 편하기에 무덤가를 배회합니다. 아무도 말릴 수도 없고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이미 이성과 양심보다는 악령의 기운이 그 사람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는 어쩌면 속편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자신은  그저 악령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불행한지 행복한지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의 존재 자체로 인해 공포와 불안에 떠는 불행을 겪게 됩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알아보는 통찰력은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데 악령은 예수님을 즉각 알아보고 제발 떠나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어쩌면 악인들이 더욱 피도 눈물도 인정도 양심도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나타나면 자신의 근본이 파멸되기 때문에 더 강한 방어벽을 쳐서 양심과 사랑이 흘러드는 틈새를 막아 버리려 합니다. 악령은 철저한 무신론이며, 그로 인한 비인간적 만행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악령’이라는 소설 속에서 하느님 없이 이념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관념의 노예가 된 혁명가 집단에서 나타나는 인간군상을 통해서 이런 악령에 사로잡힌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열한지, 그리고 얼마나 추접한 비극을 낳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잔인함의 저변에는 신을 부정하고 ‘초인’이 된 사람들이 대다수의 대중들을 지배해서 평등한 사회를 이룬다는 무신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사로잡혀서’ 노예가 되는 순간 우리는 악령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이것을 ‘유사종교’라고 했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고 섬김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념’을 말하고 있지만 악령은 또 다른 형태로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물신’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아테네의 타이몬’이라는 희곡에서 황금에 눈이 멀어서 양심도 인정도 배반해 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오! 금! 황색의 휘황찬란한 귀중한 황금이여! 이것만 있으면 검은 것도 희게, 추한 것도 아름답게, 악한 것도 착하게, 천한 것도 귀하게, 늙은이도 젊게, 겁쟁이도 용감하게 만들 수 있구나. 신들이여 이것은 웬 일인가? 이 물건은 당신들의 제관이든 하인이든 모두 다 끌어갈 수 있으며 아직은 살 수 있는 병자의 머리맡에서 베개를 빼가기도 하니... 이 황색의 노예...”

그리고 콜럼부스는 편지 속에서 “황금은 놀라운 물건이다. 그것을 가진 자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물건을 지배할 수 있다. 그 위에 황금은 영혼을 천국에 가게 할 수도 있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문학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이를 완전히 부정하기도 어렵다는 점이 아프게 합니다. 목적과 수단이 바뀔 때 혼돈이 생기고 부조리가 생깁니다. 물질이나 이념은 어디까지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고 현실적인 수단에 불과합니다.

악령 들린 사람의 이웃들인 게르게사 지방 사람들은 예수님께 떠나 가 달라고 간청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그들은 예수님을 겁내고 경원해야 했을까요?

예수님 없이 편리한 세상에 익숙했던 것이 아닐까요?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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