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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한 말씀만 하소서!

by 푸드라이터 2013. 6. 3.


한 말씀만 하소서!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6월 2일 연중 9주일 설교 말씀)

 


가슴이 따스한 사람이 그리워지는 세상입니다.

환하던 봄꽃이 만발하더니 연초록의 신록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장미꽃 피는 계절이 오는 축복받은 이 땅에는 여전히 마음에 피는 따스한 꽃이 아쉬운 세상입니다. 약육강식의 정글이 법칙이 철저한 교리로 적용되는 사회에서 약자들에 대한 차별이 서러움의 앙금으로 남는 현실은 꽃의 아름다움을 잊게 만듭니다.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 또는 낙오의 위험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은 인간 이하의 패륜과 저주 섞인 욕설과 반사회적 범죄로 역습합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이 그리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가슴의 온도를 측정해봐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루가복음에 나오는 백인대장은 가슴이 따스한 사람입니다. 그의 종이 중병을 앓아 거의 죽게 되었는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자기 종을 살려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사람이니까 고위 관료라고는 할 수 없고 하급 장교 정도 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주인과 노예의 신분이 분명한 고대사회에서 다 죽어가는 종에 대한 애정을 이토록 깊이 갖고 있다는 것이 훈훈함을 느끼게 합니다. 요즘처럼 사람을 일회용처럼 사용하는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절실한 사람 사랑의 품격인 것 같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예수님 /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


더군다나 그가 예수님께 보낸 사람들은 유다인의 원로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유다인들은 이방인들에게 배타적인 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원로라니... 그런 사람들이 흔쾌히 예수님을 찾아가게 할 정도면 서로의 마음이 많이 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의 경우를 통해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점잖은 유다 고위층의 사람들은 예수님조차도 경원시했기 때문에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발 벗고 나섰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로들은 ‘그 백인대장은 도와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까지 지어 주었습니다.’라고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그 백인대장의 마음의 그릇을 또한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은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달라 교인이 아니더라도 백성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이면 흔쾌히 앞장서서 회당까지 지어줄 줄 아는 인품의 소유자입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그 사람은 도와주실 만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주는 동료 또는 이웃이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겠습니까? 아마도 ‘이 사람의 간절한 마음을 들어주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사명감을 갖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세상을 다 얻은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백인대장은 또 사람을 보내 예수님께 전갈을 보냅니다. ‘주님, 수고롭게 오실 것까지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낫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탄을 하지 않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도 본 일이 없다!’

백인대장의 따듯하고 넓은 그 마음의 깊은 속에는 바로 겸손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닷물 속의 바닥은 낮을수록 넓은 바닷물을 품고 그 안에 많은 물고기와 식물들을 살게 합니다. 계곡에는 나뭇잎이나 종이배가 다닐 수 있고, 강물에는 고기잡이 작은 배가... 먼 바다에는 원양어선이나 큰 항공모함이 떠다닐 수 있듯이 깊은 물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살게는 하지만 한 번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지도 않고 소유권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겸손이란 이렇게 인간의 그릇을 크게 만드는 덕목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 확고한 믿음이 있으니 예수님도 감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직접 방문해서 어루만져 주고 간절한 기도를 해주어도 시원치 않을 상황에 그저 한 말씀만 해달라니...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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