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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값싼 은총과 십자가

by 푸드라이터 2013. 9. 10.


값싼 은총과 십자가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9월 8일 연중 23주일 설교 말씀)


20대 초반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천재 신학자 디트리히트 본회퍼 목사는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에 처형되었습니다. 그는 교회의 타락과 신앙의 변질을 보면서 ‘값싼 은총’을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값싼 은총은 그야말로 싸구려 또는 떨이로 취급하는 상품처럼 여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싸구려이기 때문에 그것을 산 사람도 함부로 사용하거나 존중하지 않습니다. 값싼 은총은 하느님에 근거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써 십자가 없는 은총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신 것은 세상에 오셔서 성육신 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비싼 값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파시즘의 폭력에 맞선 천재 신학자 디트리히트 본회퍼 목사


값비싼 은총은 교리나 문자로 된 말씀을 터득한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많은 군중들이 몰려오자 돌아서서 그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르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군중들의 마음과 생각에는 아마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생각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빵과 기적과 권세가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어떤 고뇌도 성찰도 없이, 희생이라는 것은 눈곱만큼도 바칠 생각도 없으면서 자기의 복락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값싼 은총은 교회가 아니더라도 절이나 무당집에서도 구할 수 있습니다. 얼마짜리 굿을 하거나 부적을 얻는 등 오히려 더 확실하게 거래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행위를 통해 마음의 불안을 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구원은 그와 다른 차원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나누는 것입니다. 더 어려운 길이겠으나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께서는 망대를 짓는 사람과 전쟁을 하는 왕의 비유를 통해서 심사숙고할 것을 권고하십니다. 넓은 들이나 양떼를 지키려고 또는 적을 감시하려고 망대를 짓는다는 것은 부와 권력의 상징일 수 있습니다. 남이 그렇게 한다고 너도나도 따라서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 봐야합니다. 전쟁을 하는 사람도 적과 아군에 대한 면밀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백전백패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망대를 짓기 전에, 전쟁에 나가기 전에 먼저 ‘앉아서’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차분하게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고독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부화뇌동하거나 감정적으로 ‘욱’하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고독한 결단을 위한 자기 성찰입니다.


예수께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값비싼 은총’입니다.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등지고 따라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대단한 결단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할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이 진실한 것인지를 진단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느님 앞에 놓고 하느님과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해 보는 것입니다. 과연 가치의 우선순위에서 하느님이 나에게 가장 윗자리에 있느냐를 성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기중심성을 버리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헌금을 하고 가족들을 내팽개친다 해도 그것은 진실한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광신자들에게서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광신자들은 진정으로 하느님을 섬긴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자기의 망상이나 아집을 위해서 자신과 주변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값싼 은총을 구하는 수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넘쳐 납니다. ‘값비싼 은총’을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는 교회와 교인들은 그만큼 ‘밭에 숨겨진 보물’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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