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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낮은 자리, 깊은 마음

by 푸드라이터 2013. 9. 4.


낮은 자리, 깊은 마음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9월 1일 연중 22주일 설교 말씀)


시인 도종환은 ‘깊은 물’이라는 시에서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라고 묻습니다. 강물엔 나룻배를 띄우고 바다엔 고깃배를 띄울 수 있습니다. 개울엔 종이배를 띄우고 큰 바다엔 여객선이나 화물선을 내보냅니다. 사람들은 물을 보고 그 물에 뜰 수 있는 배가 어떤 배인지를 압니다. 물의 처지에서 보면 그 물이 품을 수 있는 배가 따로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는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과연 우리 가슴에는 종이배 하나라도 뜰 수 있는 깊이와 여유를 지니고 있는가를 반성하게 됩니다. 마음의 깊이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혀서 시냇물커녕 메마른 돌밭이나 사막이 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 볼 문제입니다. 종이배처럼 작고 가벼운 남의 아픔이나 슬픔, 고민 같은 것을 조금도 담을 수 없는 마음은 이미 바닥이 드러난 마음입니다. 올라가는 것에만 집착해서 남의 것을 담을 수 없습니다. 높아지기 위해서 바닥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세상의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바닥이 드러났으니 그만큼 상처입기도 쉽습니다.


물이 깊다는 말은 곧 바닥이 넓고 낮다는 말입니다. 바닥이 낮을수록 그 깊이가 더해지고, 물이 깊을수록 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살 수 있습니다.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가릴 것 없이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바다 깊은 속 심연은 고요합니다. 무서울 정도로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어서 태고 때의 모습이 보전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깊이, 인격의 깊이, 마음의 깊이도 심연과 같을 때 채워지는 은총도 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낮아질 줄 아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손님들이 저마다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을 보시고 윗자리에 앉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혹시 더 높고 귀한 손님이 오면 무안하게도 일어나서 맨 끝자리에 내려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잔치에 초대받으면 맨 끝자리에 먼저 가서 앉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주인이 오히려 윗자리에 앉으라고 권유하고 다른 사람들 눈에 영예롭게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높다, 낮다라는 말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낮은 것이 있으니 높은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혼자 높아질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자기를 높여 생각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낮추어 생각할 때 높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상처를 내며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높아진다 한들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높아졌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의 망상 속에서만 높아질 뿐입니다. 그러기에 높아진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남들이 높여 줄 때 가능합니다. 낮아지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치게 발뺌을 하거나 자신을 비하시키는 것은 오히려 비굴한 모습이 아니면 상대방을 기만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겸손과 푸근한 인덕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왠지 감동스러운 인격의 향기를 맡게 됩니다. 영적인 교감이 그만큼 잘 일어나고 존경과 신뢰를 보내게 됩니다.


높임을 받기 위해서 일부러 낮아지는 척 하는 것은 이중 삼중의 위선입니다. ‘낮아진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신의 품성이고 도덕입니다. 이는 참으로 회개한 사람, 영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에게서 저절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신앙이 육화되었을 때 신앙과 인격의 향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넓고 깊은 마음의 소유자를 만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바닥이 낮고 낮아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서, 사람들의 상처와 웃음과 눈물이 섞여 와도 다 푸근히 감싸서 정화시키고,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인덕의 소유자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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