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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존 웨스터호프의 성공회 신앙의 이해3_3 : 전통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7. 18.

(3) 전통

존 웨스터호프가 “전통 혹은 고대성”(tradition or antiquity)라고 언급한 점부터 짚고 들어가자. 성공회가 “전통”이라 할 때 고대 즉 초대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이 그 표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성공회의 전통 운운할 때는 19세기 말엽 선교사들을 통해 전래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성공회 신자들이 경험한 내용을 의미하기 일쑤다. 즉 초대교회가 아니라 조부모, 부모 세대의 한국 성공회를 의미하는 말이 되 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들에게 성공회가 말하는 전통이란 고리타분한 것, 무겁고 생동감 없는 것과 동의어다. 그러나 성공회가 성서-이성-전통을 말할 때 전통이란 그리스도교 역사 중에도 초대교회를 의미한다는 점부터 기억하면서 혼동을 피하기로 하자. 초대교회 처음 다섯 세기는 역사상 어느 시기와 비교해도 응집력 있게 일치했던 시기다. 성공회는 이 시기의 신앙과 성서해석이 널리 일치하고 받아들여진, 그런 의미의 보편성(가톨릭)에 주목한다.

신학 작업을 할 때 보통 보편성, 연속성, 반향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생각한다. 보편성이란 구성원들의 경험을 얼마나 보편적으로 반영하느냐는 기준이다. 연속성이란 이전의 신학과 얼마나 일치하고 있느냐는 기준이다. 그리고 반향성이란 작업의 결과 사람들이 얼마나 거기 호응하느냐는 기준이다. 보편성을 공시성의 기준이라고 한다면 연속성이란 통시성의 기준이고 소위 가톨릭성이란 공시, 통시적으로 보편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가톨릭을 정의할 때 “언제 어디서나 받아들인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처음 다섯 세기란 어느 때보다도 신학 작업에 있어 보편성, 연속성, 반향성을 확보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가톨릭적 신앙을 드러낸 시기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회가 어떤 신학적 작업을 할 때 초대교회의 전통에 호소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성공회의 개혁가들이 성공회 확립을 변호할 때 자주 등장한 것이 초대교회로 돌아감이라는 기준이었다.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성공회가 전통이라 할 때 초대교회 처음 다섯 세기를 염두에 둔다는 말은 이 시기는 성서해석에 있어 일치감과 응집력이 존재한 때로 본다는 말이다. 즉 전통이란 앞선 사람들이 성서를 놓고 이성적 숙고작업을 해서 그 의미를 밝힌 것이다. 우리는 우리 시대와 상황에서 성서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할 때 앞선 사람들의 해석을 참고하는데 이것이 전통이다. 그런데 초대교회 처음 다섯 세기는 해석에 있어 일치했던 시기이므로 우리에게도 소중한 전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서와 전통은 엄밀히 선을 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면 성서 안에 이미 전통이 들어 있다. 우리는 예컨대 신약성서에서 바울로의 서신들을 그대로 성서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바울로 역시 전통에 기대면서 말하고 글을 썼다. 바울로 사도가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하고 말할 때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이란 전통 즉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구전 전승을 의미한다(1고린 15:3). 그러니까 바울로만 해도 어떤 전통에 입각해서 성서의 의미를 밝히고 하느님의 뜻을 찾은 것이다. 이렇듯 성서 안에 이미 성서-이성-전통의 요소가 같이 들어 있음을 자각하고 밝힌 점이 성공회 정신의 훌륭한 특성이다.

한편 웨스터호프는 전통이 그저 성서해석의 역사만이 아님을 짚는다. 바울로가 기댄 구전을 접하고 경험하는 자리가 어딘가? 바로 예배라는 맥락이다. 신앙의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느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구전을 접하고 또 전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 예배 즉 전례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빛에서 구약의 율법과 전승을 해석하고 하느님의 뜻을 식별한 공동체의 경험이 몹시 중요하다. 그래서 성공회는 성서를 교황 같은 고위성직자만 해석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지만 동시에 개인이 멋대로 해석할 수 있다고도 보지 않았다. 다만 공동체로 모여 예배드리는 전례의 맥락에서 풀이하고 받아들이는 해석의 공동체성을 중시했다. 이것은 아마도 ‘공동체 검증 혹은 반증의 원리’라 부를 만한 것으로 오늘날 영성을 논함에 있어서 거짓영성을 식별하는데 중요하게 부각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웨스터호프는 인간이 무오할 수 없듯 전통도 그렇다고 말한다. 그래서 성서도 전통도 부단히 재해석되고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통에 참여한다고 이해한다. 그런데 성공회는 이 전통을 부동의 무엇이기보다 계속 살아 변하는, 유기체의 생명과도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전통은 화석처럼 죽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도 하느님의 뜻을 찾는 공동체가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무엇이다. 이렇게 부단한 대화와 재해석의 여지란 동시에 관점의 차이와 긴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공동체는 서로 대할 때 겸손하고 온유하게, 그리고 오래 참으면서 사랑으로 서로 수용하라는 바울로의 권고를 자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라는 구절은 최근 세계성공회 내의 갈등과 긴장을 다루면서 가장 많이 인용된 성서말씀이 아닌가 한다(에페 4:1-3).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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