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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공회 묵주의 상징성과 절기의 의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7. 18.

요즘 성공회묵주를 사용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곱 개씩 네 묶음인 성공회묵주의 모양이 갖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성공회묵주를 바닥에 내려놓으면 원 모양이 됩니다. 이 원은 시간의 수레바퀴를 상징합니다. 태어나서 우리가 걷는 인생 여정 특히 영적순례의 여정을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네 개의 십자구슬이 서로 마주보는 방향으로 선을 그으면 십자가 모양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상징성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따르는 순례의 삶을 나타냅니다.


본디 교회력이란 동지와 하지, 춘분과 추분을 네 개의 정점으로 해서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배열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생애의 주요사건을 거기 상응하여 기억하고 묵상하게끔 한 것이지요. 대림, 성탄, 공현, 사순, 성주간, 부활과 성령강림의 절기들을 태양력의 네 정점을 수레바퀴의 축으로 해서 한 바퀴 돌게 함으로써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여정을 묵상하며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전례력이란 이렇듯 그리스도교 수행체계라 할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동지(冬至) 즉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로부터 사흘 뒤 죽은 듯 멈춰있던 태양이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고대인들은 이때를 빛이 세상에 탄생하는 날 그래서 세상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때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볼 때 이때는 성탄을 기념하고 묵상하기에 적절한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절은 춘분(春分) 즉 낮이 밤보다 길어질 무렵 그래서 빛이 어둠을 이기는 때에 배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성령강림 절기는 하지(夏至) 즉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고 밝은 때에 배열하여 묵상한 것입니다.


1) 대림절: 대림절은 성탄절 4주 전에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베들레헴에 탄생하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기다리는 기간이면서 또한 종말의 때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의미의 절기입니다.


2) 성탄절: 오늘날 성탄절은 12월 25일을 기점으로 12일간 지속되는 절기입니다. 성탄절은 물론 하느님이 인간의 몸으로 화육하셨음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성탄과 성육신이란 주제는 과거의 어느 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 여정에서 우리 내면에 하느님 생명이 탄생하여 우리 또한 하느님의 거처요 성전이 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3) 공현절: 공현절은 빛이 어둠을 뚫고 나와 세상이 알고 또 보게 되었다는 의미의 절기입니다. 1월 6일부터 시작되어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직전 화요일까지 이어집니다. 빛을 따라온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야기, 예수님의 세례 및 가나 혼인잔치에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 등을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모두 빛이 세상에 들어오면서 때 벌어지는 일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내면의 어둠과 무지에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면 일어날 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4) 사순절: 재의 수요일에서 성지주일에 이르는 40일이 사순절입니다. 빛이 드러나면 어둠의 저항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순절은 이러한 어둠의 저항과 반격을 경험하는 절기입니다. 영적 순례의 여정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겪는 일입니다. 우리 내면에서 하느님 생명이 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면 안팎의 어둠이 대립하고 갈등하면서 우리의 수난을 마련합니다. 사순절에 우리는 어떻게 어둠과 맞서고 빛을 따르는 대가를 치르는지 묵상합니다.


5) 성주간: 성지주일 및 고난주일로 시작되는 한 주간입니다. 수난복음을 읽는 주간이며 성목요일(혹은 건립성체일), 성금요일, 성토요일로 이어집니다. 어둠과의 투쟁이 절정에 달해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두려움과는 달리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생명으로 가는 통로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죽어도 죽지 않는 하느님 생명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생명을 깨닫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이 성주간입니다.


6) 부활절: 부활절은 부활전야부터 시작해서 50일간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교회의 핵심 절기이며 매주일은 작은 부활절로 지켜지는 셈입니다. 예수님처럼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도 어둠과 죽음에 감싸이나 그것은 마치 고치처럼 우리에게 변화된 새 생명,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결합한 생명을 말없이 준비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부활 절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생명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발현하는 것을 기념하고 묵상합니다.


7) 성령강림절: 어둠을 뚫고 솟구친 빛이 마침내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하나로 연합할 때 많은 생명의 선물이 쏟아지니 교회의 탄생이요 성령의 은사입니다. 부활절 후 50일이 지나 성령강림일이 되고 이후는 성령강림 후 주일 혹은 연중주일이 되어 교회력에서 가장 긴 기간이 됩니다. 성령강림일에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이 사람 위에 부어져 우리 또한 그분처럼 성육신한 존재 혹은 작은 그리스도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세상의 죄와 분열을 없애시는 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합니다.


일곱 개씩 네 묶음으로 이루어진 성공회묵주에서 태양력의 네 정점을 놓고 돌아가는 교회력의 일곱 절기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동서남북 네 방향을 다 포괄하고 지수화풍의 네 요소를 다 포괄하는 의미를 기억하는 것도 성공회묵주가 갖는 상징성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한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빛과 어둠,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자랑과 수치를 모두 하느님 자비 안에서 담아내어 통합하여 온전해지는 의미를 기억하기로 합니다. 한편 인간경험의 전체성을 존중하는 성공회 영성다운 의미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주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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