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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10년 1월 17일 (연중 2주일) 강론초 (요한 2:1-1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11.


2010년 1월 17일 연중 2주일 성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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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62:1-5

1. 시온을 생각할 때, 나는 잠잠할 수가 없다. 예루살렘을 생각할 때,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정의가 동터 오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기까지 어찌 잠잠할 수 있으랴? 2. 마침내 뭇 민족이 너의 정의를 보고 모든 제왕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야훼께서 몸소 지어주실 새 이름,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너를 부르리라. 3. 너는 야훼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관처럼 빛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인 왕관처럼 어여쁘리라. 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여자'라 하지 아니하고 너의 땅을 '소박데기'라 하지 아니하리라. 이제는 너를 '사랑하는 나의 임'이라, 너의 땅을 '내 아내'라 부르리라. 야훼께서 너를 사랑해 주시고 너의 땅의 주인이 되어주시겠기 때문이다. 5. 씩씩한 젊은이가 깨끗한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듯 너를 지으신 이가 너를 아내로 맞으신다.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반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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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6:5-10

5 주여, 당신의 사랑 하늘에 닿았고 ∥ 당신의 미쁘심 구름까지 닿았습니다.

6 당신의 정의는 우람한 산줄기 같고 ∥ 당신의 공평하심 깊은 바다와도 같습니다.
7 주님은 짐승도 사람처럼 구해 주시니 ∥ 당신의 그 값진 사랑 어찌 형언하리이까?
8 당신의 날개 그늘 아래 몸을 숨기는 자, ∥ 당신의 집 기름기로 배불리 먹이시고
9 시냇가 단물을 마시게 하시니: 생명의 샘, 정녕 당신께 있고 ∥ 우리 앞길은 당신의 빛을 받아 환합니다.
10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한결같은 사랑 주시고 ∥ 마음 바른 자에게 억울한 일 당하지 않게 하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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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린 12:1-11

1. 형제 여러분, 이제는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는데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2. 아시다시피 여러분이 이교도였을 때에는 헛된 우상에게 매여서 우상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녔습니다. 3. 그래서 여러분에게 일러둡니다마는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받아라." 하고 욕할 수 없고 또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4.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주님을 섬기는 직책은 여러 가지이지만 우리가 섬기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일의 결과는 여러 가지이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이루어주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8. 어떤 사람은 성령에게서 지혜의 말씀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지식의 말씀을 받았으며 9.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믿음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병 고치는 능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10. 어떤 사람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직책을, 어떤 사람은 어느 것이 성령의 활동인지를 가려내는 힘을,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그 이상한 언어를 해석하는 힘을 받았습니다.
11. 이 모든 것은 같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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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1-11

1. 이런 일이 있은 지 사흘째 되던 날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도 계셨고 2. 예수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초대를 받고 와 계셨다. 3.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알렸다. 4. 예수께서는 어머니를 보시고 "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저나 어머니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옮길 수도 있다. 5. 그러자 예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고 일렀다.

6. 유다인들에게는 정결 예식을 행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 예식에 쓰이는 두세 동이들이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7.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그 항아리마다 모두 물을 가득히 부어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여섯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자 8. 예수께서 "이제는 퍼서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어라." 하셨다. 하인들이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었더니 9.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 물을 떠간 그 하인들은 그 술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고 있었지만 잔치 맡은 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술맛을 보고 나서 신랑을 불러 10. "누구든지 좋은 포도주는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다음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 법인데 이 좋은 포도주가 아직까지 있으니 웬일이오!" 하고 감탄하였다.
11. 이렇게 예수께서는 첫 번째 기적을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서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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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은혜로우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놀라우신 영광을 드러내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에게 성령의 선물을 풍성히 주시어 새 생명으로 가득 찬 기쁜 생활을 누리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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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의 혼인잔치 -변화를 일으키는 성사(聖事) (요한 2:1-11)

우리 성공회(聖公會)의 신앙생활은 성사적(聖事的)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되고 예수님의 제자되는 기쁜 소명과 구원의 은총을 우리는 세례성사로 누립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용서와 치유를 조병성사와 고해성사로써 경험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성체성사를 통해 깨닫고 체험합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사실 성사(聖事)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씀”과 “성사”를 서로 대립시키며 말씀에 비해 성사가 형식적이고 미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사적인 전례보다도 설교 중심의 예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회는 외면적인 의식에만 집착하여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함으로 말씀에 대한 확신과 뜨거운 성령체험이 부족해서 전도가 안되고 교회성장이 안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들은 바로잡아야 할 오해입니다.

성사를 바로 이해하는 데에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는 훌륭한 근거가 됩니다.
성사는 철저히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일로서 진정한 의미의 성령체험입니다. 머리를 써서 하느님을 규정하거나, 느낌을 통해 하느님을 포착하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성사는 우리가 하느님의 현존을 참으로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되는 일입니다. 성사를 받고도 우리의 인식과 실천과 관계, 곧 우리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참된 성사가 아니라 지어낸 의식에 불과할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임마누엘의 신비가 바로 성사의 근원입니다.
성사는  우리를 말씀을 통해서 변화된 새 인간이 되게 합니다. 죽어서 육신이 없는 영적 존재가 되어야만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고 천당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셨고 단지 죽어서가 아니라 몸으로 부활하시어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단순히 죽어서 가는 내세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부활해서 누리는 새 삶, 새로운 관계입니다. 이 때 부활은 성사를 통한 자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다시사심, 곧 십자가와 부활은 그 새로운 변화의 차원을 인류에게 열어주셨습니다.

성체성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합니다. 우리가 땅에서 준비하여 봉헌한 떡과 포도주가 성체성사를 통해서 하늘의 양식, 생명의 양식,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되어 나누어집니다. 교회는 이 신비를 “객관적인 기적”이나 “주관적인 기념”이 아니라 은총에 의한 “거룩한 변화”라고 강조합니다. 하느님의 현존은 오로지 성사적으로만 경험됨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 경험은 머리로 하는 이성적 추론이 아닙니다. 암시를 통한 정서적 황홀경도 아닙니다. 우리 삶이 말씀과 성사를 통해서 깊은 차원에서 변화됨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경험하고서도 우리 삶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결예식에 쓰이는 돌항아리에 담긴 물이 예수님을 통해서 어느새 최상급의 포도주로 변했다는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는 우리 인생도 임마누엘 예수님을 통해서 온전히 성령을 가득히 받은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성사의 신비를 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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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奇蹟)과 성사(聖事)(요한 2:1-11)

“교우님은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정말로 믿으십니까?”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 제가 문득 어느 교우께 던진 이 물음은 아마도 성공회 사람들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물음일 것입니다. 

교우님도 매우 당황한 기색이지만 의연히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제껏 한 번도 그것이 진짜 사실임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데요...”
“그렇군요. 그러면 그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교훈과 감동을 얻으셨나요?”
“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능력과 사랑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이죠...” 

“아멘! 참 좋습니다. 그러니까 잔치가 허망하게 끝나지 않도록 배려하시는 예수님의 그 마음과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의 그 능력이 지금도 우리에게 함께 해주심을 신뢰하신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시겠어요? 예수님이 행하신 수많은 일들 가운데 이 일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첫 번째 기적이라고 한 이유는 무얼까요? 가나의 어떤 잔치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일이 정말로 그렇게 대단한 기적일까요? 오늘날 우리는 수력을 전기로 바꾸고 모래로 반도체를 만듭니다. 가나의 그 기적이 오늘 우리와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정말 돌항아리 여섯 개의 물이 포도주로 변한 그 물리적인 현상이 그렇게 대단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첫 번째 기적의 내용일까요? ”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실려고 ......?”

“성경의 모든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교우님의 믿음은 분명 소중합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그 믿음은 계속 지켜야 할 믿음이 아니라 점차 극복해야 할 믿음입니다. '사실 그대로'에 집착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 나에게만은 '보여지기'를 원하는 것인데 그것은 기적(奇蹟)을 추구하는 믿음으로 이어지고 그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올바른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성사(聖事)입니다.
성사는 보여지는 사실 그대로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사실 너머의 보이지 않은 의미를 깨닫고 보는 눈을 여는 일입니다.
'보이는 것'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은총'을 경험하는 것이지요.
우리를 구원하는 것,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바로 성사입니다.”
“어렵네요...” 
“어려우셔도 생각을 멈추지 마시고 묵상하시면 성령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 성공회(聖公會)의 신앙생활은 성사적(聖事的)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되고 예수님의 제자되는 기쁜 소명과 죄의 용서를 우리는 세례성사로 누립니다.
예수님의 병고침은 조병성사와 고해성사로 경험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성체성사로 깨닫고 체험합니다.
우리의 감사성찬례(미사)가 바로 가나의 혼인잔치가 상징하는, 하늘과 땅이 하나되는 구원의 잔치입니다. 이 잔치에서 우리가 땅에서 준비한 떡과 포도주가 하늘의 양식, 생명의 양식,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됩니다.
물이 어느새 포도주로 바뀌듯이 말이죠.
그래서 가나의 그 일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첫 번째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2007.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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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잔치인 삶

인생살이는 고통의 바다(苦海)와 같다는 것은 진실된 통찰입니다. 분명 삶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뿐이라면...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는 고통 속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은 우리를 하느님의 나라, 구원의 잔치로 초대합니다.


그 잔치는 하느님과 인간의 참된 만남이 이루어지는 일종의  혼인잔치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하나가 될 때에야 비로소 참된 평화와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땅의 현실을 살지만 하늘의 이치를 따라야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통한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과 우리들의 화해의 잔치이고 하늘의 도리와 땅의 현실이 조화되는 합일의 잔치입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신 가나 지방의 한 혼인잔치는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영적인 잔치를 상징합니다.
정결예식에 쓰이는 돌항아리는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으로서의 율법과 제사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성령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성만찬을 기억하거니와 포도주는 주님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하느님나라에서 누리는 영원한 기쁨을 상징합니다.


우리 삶은 풍성한 잔치이어야 합니다.
무의미한 삶, 하루하루 고역인 삶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사귐이 이루어지는 기쁨과 행복한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주님께서는 기쁨의 포도주를 공급해주십니다.
주님의 보혈은 황홀한 구원의 포도주입니다.
그 포도주는 주님의 사랑과 희생이며 우리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와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힘입니다.
그 포도주는 곧 성령의 임재이기도 합니다.
계명을 잘 지키고 제물을 잘 바치었기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자신을 열어 성령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힘과 지혜로 살아감으로써 구원을 이루어갑니다.
우리의 미사는 바로 구원의 잔치입니다. 이 미사를 통하여 우리는 율법의 제사가 아니라, 성령의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4.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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