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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10년 1월 10일 (주의 세례주일/연중1주일) 강론초 (루가 3:15-17,21-22)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9.


 2010년 1월 10일 주의 세례(연중 1주일) 성서말씀 

이사 43:1-7

1 그러나 이제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의 말씀이시다. 이스라엘아, 너를 빚어 만드신 야훼의 말씀이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건져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사람이다. 2 네가 물결을 헤치고 건너갈 때 내가 너를 보살피리니 그 강물이 너를 휩쓸어가지 못하리라. 네가 불 속을 걸어가더라도 그 불길에 너는 그을리지도 타버리지도 아니하리라. 3 나 야훼가 너의 하느님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내가 너를 구원하는 자다. 이집트를 주고 너를 되찾았고 에티오피아와 스바를 주고 너를 찾아왔다. 4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그러니 어찌 해안 지방을 주고라도 너를 찾지 않으며 부족들을 내주고라도 너의 목숨을 건져내지 않으랴!
5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보살펴 준다. 내가 해 뜨는 곳에서 너의 종족을 데려오고, 해 지는 곳에서도 너를 모아오리라. 6 내가 북쪽을 향해서도 외치리라. '그들을 어서 내놓아라.' 남쪽을 향해서도 외치리라. '그들을 잡아두지 마라.' 아무리 먼 데서라도 나의 아들들을 데려오너라. 땅 끝에서라도 나의 딸들을 데려오너라. 7 그들은 내 백성이라고 불리는 것들, 나의 영광을 빛내려고 창조한 내 백성, 내 손으로 빚어 만든 나의 백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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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9

1 하느님을 모시는 자들아, 주님께 돌려 |드려|라. ∥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돌려|드려|라.

2 그 이름이 지니는 영광 주님께 돌려 |드려|라. ∥ 거룩한 빛 두르신 주님께 머리를 |조아|려-|라.
3 주님의 목소리가 바다 위에 울려 |퍼진|다. ∥ 영광의 하느님께서 천둥소리로 |말씀|하신|다.
4 주께서 바닷물 위에 나타나신다. 그 목소리는 힘|차시|고 ∥ 그 목소리는 |장엄|하시|다.
5 주님의 목소리에 송백이 쩌개|지-|고 ∥ 레바논의 송백이 |갈라|진-|다.
6 레바논 산이 송아지처럼 |뛰-|고 ∥ 시룐 산이 들 송아지처럼 |뛰게|하신|다.
7, 8 주님의 목소리에 불꽃이 튕기고, 광야가 흔들|거린|다. ∥ 주 앞에서 카데스 광야가 |흔들|린-|다.
9 주님의 목소리에, 상수리나무들이 뒤|틀리|고 ∥ 숲들은 벌거숭|이가|된-|다.
# 모두 주님의 성전에 |모-|여 ∥ 한결같이 그 영|광을|기린|다.
10 주께서 거센 물결 위에 옥좌를 잡|으시|고 ∥ 영원히 왕위를 |차지|하셨|다.
11 주님의 백성들아, 그에게서 새 힘을 |얻-|고 ∥ 복을 받아 평화를 |누리|어-|라.
# 영광이 |성부|와 ∥ 성|자와|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 그리고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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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8:14-17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리로 보냈다. 15 베드로와 요한은 그리로 내려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16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성령은 받지 못했던 것이다. 17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자 그들도 성령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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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 3:15-17, 21-22

15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던 터였으므로 요한을 보고 모두들 속으로 그가 혹시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러나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이제 머지않아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신다. 그분은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17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21 사람들이 모두 세례를 받고 있을 때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고 계셨는데 홀연히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그에게 내려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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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성공회기도서

1) 영원하신 하느님, 예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에 성령을 보내시고 사랑하는 아들이라 말씀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우리도 세례의 언약을 굳게 지키며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2) 사랑의 하느님, 의로우신 성자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시어 우리 죄인들과 같이 세례를 받으셨나이다. 비옵나니,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살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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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洗禮), 하느님나라의 입문(入門) (루가 3:15-17,21-22)

오늘은 주님의 세례 받으심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고 일하시는 첫걸음으로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 즉 죄로부터의 용서가 하느님께로 돌이키는 회개와 그 표시인 세례로 가능하다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의식 자체가 아니라 그 의식을 통해서 변화된 삶의 행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요.
이 회개의 세례는 당시 성전에서 제물을 바쳐 죄를 씻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제사장 중심의 성전종교에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세세한 율법규정을 모두 철저히 지켜야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지도했던 율사 중심의 율법종교에도 큰 변혁이었습니다.

세례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큰 관계의 변화가 생겼음을 드러냅니다. 하느님 나라의 문이 새롭게 열린 것입니다.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큰 차이는 큰 장벽을 만듭니다.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도 여러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능력과 학식과 재력과 혈연과 집안, 종교 등등 많은 차이가 역시 사람들 사이에 장벽으로 쌓아올려집니다.
세례는 바로 그러한 장벽 한 가운데 서로 소통하는 문을 크게 만드는 일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시면서 거기에 한 차원 더 깊은 이해를 더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하느님 나라는 일종의 실체적이고 객관적인 하느님의 심판과 권위로운 통치입니다.
이에 비해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는 실존적이고 관계적인 하느님의 현존이요 사랑의 다스림인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회개를 통해 행실의 변화를 강조한다면 예수님의 세례는  사랑의 불, 성령의 불을 통해 인격의 변화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세례는 고난과 죽음의 세례와 깊이 연결됩니다.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 낼 때 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루가12:50)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너희도) 받을 수 있단 말이냐?”(마르10:37)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를 표현하신 말씀들입니다.

세례는 하느님 나라에 입문하는 성사입니다. 하지만 세례로써 이미 죄를 용서받았다, 아니다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안팎의 모든 장벽을 허물고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났음이 중요합니다.

불(火)의 세례라는 표현은 열광적인 황홀경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세상을 불태워야 할 사랑과 진리의 불을 뜻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루가 12:49).
흙이 불을 통해 자기(瓷器)로 변형되듯이 우리의 동물적 인간성은 세례성사를 통해서 하느님 자녀의 성품으로 변화되어갑니다.
성령세례는 우리가 우리 마음에 성령을 모시고 사는 이들이 됨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자아도취나 자기만족에 머물게 하지 않고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십자가의 길을 걸어 하느님 나라의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이끌고 도우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그 성령과 불로 받은 세례가 우리의 참된 기쁨이요 자랑이요 감사가 되기를 간절히 원할 따름입니다. (2010. 1.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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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이 받으신 세례 (루가 3:15-17,21-22)

오늘은 주님의 세례 받으심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몸으로 오셨지만 예수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고  죄를 짓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우리의 죄를 없애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가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고 죄를 없앤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죄가 없다는 것은 능력이 대단하여 실수가 없는 슈퍼맨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있다는 것,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해 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 안에 살고 있는 자신을 깨닫는 일,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매순간 순종하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방법은 우리가 다시는 죄를 못 짓도록 엄히 벌하시고 지옥의 위협으로 내리 누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용서하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이는 곧 하느님 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함께 하시고 이끌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용서는 과거의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새로이 함께 시작하기 위하여 지금 이 순간 상대를 보듬어 안는 것입니다.

 주님의 세례는 우리를 위한 당신의 “용서의 사역”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까닭은 무슨 죄를 용서받아 홀로 마음 편하고 천당에 가겠다는 우리들의 그런 동기가 아닙니다. 그분에게 세례는 세상 사람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전하시는 그 소명을 확인하고 그 사역을 시작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외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다.” 

우리도 성찬례를 거행하며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의 세례는 장차의 고난과 죽음의 세례와 연결됩니다.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 낼 때 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루가12:50)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너희도) 받을 수 있단 말이냐?”(마르10:37)

예수님의 이 세례의 일생을 성부께서 섭리하셨음을, 성경은 
그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왔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는 음성이 들려왔다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를 통하여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세례는 단지 우리의 죄를 씻어내어 징벌을 피하고 죄의식을 벗어나고자 하는 주술적인 의식이 아닙니다.

예수의 세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닙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전하는 바와 같이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의 세례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가 그러했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가 받는 세례가 그렇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례가 아니라 성령의 임재, 성령의 인도, 성령의 동행이 시작되는 사건인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 속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세례 이전의 육적인 나는 죽고, 이제는 영적인 인간으로 부활하여 하느님께 소명을 받습니다.
우리의 세례는 주님의 구원사역에 대한 인식과 순종과 협조이고, 달라진 운명의 시작입니다.
오늘 복음서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고 계셨다고 전합니다.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룬 우리도 이런 말씀들을 마음 깊이 되새겨 듣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의 말씀이시다. 이스라엘아, 너를 빚어 만드신 야훼의 말씀이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건져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사람이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2007.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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