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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9년 2월 22일(연중 7주일) 강론초 (마르2:1-12 중풍병자를 고치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2. 21.


2009년 2월 22일 연중 7주일 성서말씀 


이사 43:18-25

18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마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마라. 19 보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였다. 이미 싹이 돋았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느냐? 내가 사막에 큰 길을 내리라. 광야에 한길들을 트리라. 20 사막에 물을 대어주고 광야에 물줄기를 끌어들이리니, 뽑아 세운 내 백성이 양껏 마시고 승냥이와 타조 같은 들짐승들이 나를 공경하리라. 21 내가 친히 손으로 빚은 나의 백성이 나를 찬양하고 기리리라.
22 야곱아, 너는 나를 찾지 않았다.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정성을 쏟지 않았다. 23 너는 양을 번제로 바치지도 않았고 제물을 드려 나를 섬기지도 않았다. 내가 언제 너에게 봉헌물을 바치라고 성화를 대었느냐? 향을 피우라고 괴롭혔느냐? 24 너는 갈대향을 바치는 데 돈쓰는 것을 아까워하였고 제물의 기름기를 흡족히 바칠 생각도 없었다. 도리어 너는 죄를 지어 나의 화를 돋우었고 불의를 저질러 나의 속을 썩였다. 25 네 죄악을 씻어 내 위신을 세워야겠다. 이 일을 나밖에 누가 하겠느냐? 너의 죄를 나의 기억에서 말끔히 씻어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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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1
1 복되어라, 딱하고 가난한 사람 알아주는 |이-|여, ∥ 불행한 날에 주께서 그를 구해 |주시|리-|라.
2 그를 지켜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땅 위에서 복을 |주시|며 ∥ 원수들에게 먹히지 않게 |하시|리-|라.
3 병상에서 그를 붙들어 주|시리|니 ∥ 자리를 떨쳐 일어|나게|되리|라.
4 내가 드릴 말씀은 이 한 마디,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나를 고쳐 주소서.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5 원수들은 나를 |보-|고 ∥ "저자가 언제 죽어서 그 이름이 없어|질꼬?"|하-|며
6 찾아 와서는 속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 험담할 꼬투리를 찾으면 나가는 길로 떠|들어|댑니|다.
7 모두들 내가 미워서 입을 모아 수군|대-|며 ∥ 나의 불행을 궁리하며 나를 해치|려고|합니|다.
8 그는 죽을 살이 뻗쳤구나 |하-|며 ∥ 병들어 영영 일어나지 못하|리라|합니|다.
9 흉허물 없이 사귀던 친구마저, 내 빵을 먹던 벗들|마-|저 ∥ 우쭐대며 뒷발|질을|합니|다.
10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일으켜 |주소|서. ∥ 나 저들에게 앙갚음 |하리|이-|다.
11 원수들이 내 앞에서 큰소리치지 못하게 |되-|면 ∥ 내가 당신의 눈 밖에 나지 않은 줄을 |알리|이-|다.
12 나를 몸 성하게 붙들어 |주시|고 ∥ 영원히 당신을 길이 모|시게|하소|서.
13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여, 찬미 받|으소|서. ∥ 처음도 끝도 없이 영원히, |아멘,|아-|멘
◇ 영광이 |성부|와 ∥ 성|자와|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 그리고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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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린 1:18-22
18 내가 하느님의 진실성을 걸고 맹세하거니와 여러분에게 한 내 약속은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19 그리고 실바노와 디모테오와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는 언제나 진실이 있을 따름입니다. 20 하느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찬양하며 "아멘." 하고 응답합니다.
21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과 우리를 굳세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사명을 맡겨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확인해 주셨고 그것을 보증하는 표로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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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 2:1-12
1 며칠 뒤에 예수께서는 다시 가파르나움으로 가셨다. 예수께서 집에 계시다는 말이 퍼지자
2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마침내 문 앞에까지 빈틈없이 들어섰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3 그 때 어떤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들고 왔다. 4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가 계신 바로 위의 지붕을 벗겨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요에 눕힌 채 예수 앞에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6 거기 앉아 있던 율법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7 "이 사람이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하여 하느님을 모독하는가? 하느님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중얼거렸다.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는 것과 '일어나 네 요를 걷어가지고 걸어가거라.' 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느냐? 10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그리고 나서 중풍병자에게 11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12 중풍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곧 요를 걷어가지고 나갔다. 그러자 모두들 몹시 놀라서 "이런 일은 정말 처음 보는 일이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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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성공회기도서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께서는 놀라운 기적을 통하여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가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선한 일을 행하게 하시고, 주님의 능력으로 더욱 굳세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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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마르 2:1-12)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이야기입니다. 지붕을 뚫고 환자를 달아 내리는 그 정성이 놀랍고, 병의 치료를 죄의 용서와 결부시키시는 예수님의 태도가 인상적입니다만 무엇보다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는 것”이 중요한 메시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본문을 대하면 예수님을 감동시키려면(?) 정성이 지극해야 되고, 예수님께 치유의 은총을 입으려면 믿음이 강력해야(!) 하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기적적인(!) 능력으로 불치병, 난치병을 치유하시는 분으로 받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교훈을 찾곤 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들의 그런 믿음을 보시고 은총을 베푸셨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믿음’은 예수님께 치유의 능력이 있음을 확신한 것 이전에 어떻게 해서든 병자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자체로 이미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병을 하느님의 징벌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던 율법학자들은 병자를 치유되어야 할 사람으로 보지 않고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만 봅니다. 율법학자에게 그 병자는 하느님의 징벌(저주)는 하느님만이 용서하실 수 있다는 그들의 교리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함부로 치유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그 병자를 달아 내린 이들은 그러한 율법학자들의  비정한 통념에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 믿음이 옳다고 하십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논지는 단순 명쾌합니다. “인간의 죄는 용서받아야 하고, 인간의 질병은 치유되어야 하고, 인간의 실패는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평범해 보이지만 이 간단한 내용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그 분의 실천과 권위의 근거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벌주는 취미를 즐기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끝없이 회복하여 주시며 우리에게서 살아 있는 찬양과 감사를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병든 이에게 그 원인을 추궁하며 그 병고를 당연한 듯이 여기고 싶어합니다. 자기의 병에 대해서도 그런 죄책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또 종종 누군가에게서 죄를 찾아내 정죄함으로써 내가 경건함을 인정받으려 합니다. 실제로 자연재해를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주장하는 설교자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마음이 완고해져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우리에게 복음(기쁜 소식)은 바로 “너희들의 죄는 용서로써 해결되고, 질병은 치유되어야 하며, 실패는 결코 좌절일 수 없다”는 주님의 격려 담긴 음성이요 사랑 어린 손길인 것입니다.(2006.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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