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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9년 2월 1일 (연중 4주일) 강론초 (마르 1:21-28 악령을 굴복시키시는 권위의 예수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 29.

 



2009년 2월 1일 연중 4주일 

신명 18:15-20
 

15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나와 같은 예언자를 동족 가운데서 일으키시어 세워주실 것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16 이것은 호렙에서 대회가 열렸던 날 너희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 청을 드렸던 바로 그것이다. '나의 하느님 야훼의 소리를 다시는 직접 듣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 무서운 불을 다시는 보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가 죽을까 두렵습니다.' 17 야훼께서는 옳은 말이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이렇게 일러주셨다. 18 '나는 네 동족 가운데서 너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키리라. 내가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주리니, 그는 나에게서 지시받은 것을 그대로 다 일러줄 것이다. 19 그가 내 이름으로 하는 말을 전할 때 듣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친히 그에게 추궁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말하라고 시키지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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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1

1 알렐루야! 정직한 이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내 마음 다 쏟아 주님께 |감사|하리|라.
2 주께서 하시는 일들 하도 장|하시|어∥ 그 일들을 좋아하는 사람, 모두 깊이 |생각|한-|다.
3 그 하신 일 영광스럽고 찬|란하|여∥ 그 정의는 영원히 |남으|리-|라.
4 그 놀라운 일들을 기념토록 남기|셨으|니,∥ 주께서는 자비롭고 |인자|하시|다.
5 맺으신 계약을 길이 잊지 아니|하시|고∥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먹을 |것을|주신|다.
6 뭇 민족의 땅을 그들에게 유산으로 |주시|고∥ 그 위력을 당신 백성에게 |보여|주신|다.
7 하시는 일은 정의와 진리|이시|며∥ 그 모든 법은 진실 그 |자체|이시|니,
8 영원히 흔들리지 |않도|록∥ 진실과 정직으로 |제정|되었|다.
9 속전을 내어 당신 백성을 구해 내시고: 영원히 지킬 계약을 맺으|셨으|니,∥ 그의 이름 두렵고도 |거룩|하여|라.
10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원이요: 그대로 사는 사람이 슬기를 |깨치|나니,∥ 주님 찬송 영|원히|올려|라.
영광이 |성부|와 ∥ 성|자와|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 그리고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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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린 8:1-13

1 이제는 우상 앞에 놓았던 제물에 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다 지식이 있다."고 여러분은 말하는데 사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사람을 향상시켜 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그를 알아주십니다.
4 우상 앞에 놓았던 제물을 먹는 문제가 나왔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세상에 있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또 하느님은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5 남들은 하느님도 많고 주님도 많아서 소위 신이라는 것들이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다고들 하지만 6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느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며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이고 그분을 통해서 만물이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7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교우들은 아직까지도 우상을 섬기던 관습에 젖어 있어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을 때는 그것이 참말로 우상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양심이 약하기 때문에 그 음식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합니다. 8 음식이 우리를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가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안 먹었다고 해서 손해될 것도 없고 먹었다고 해서 더 이로울 것도 없습니다. 9 다만 여러분의 자유로운 행동이 믿음이 약한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0 지식이 있다는 여러분이 우상의 사당에 앉아 제물을 먹고 있는 것을 믿음이 약한 사람이 본다면 그는 양심에 꺼리면서도 용기를 얻어 가지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11 그렇게 되면 믿음이 약한 그 사람은 여러분의 그 지식 때문에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죽으시지 않았습니까?
12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결국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넘어뜨린다면 나는 그를 넘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절대로 고기를 다시 입에 대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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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 1:21-28


21 예수의 일행은 가파르나움으로 갔다.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듣고 놀랐다. 그 가르치시는 것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23 그 때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 하나가 회당에 있다가 큰소리로 24 "나자렛 예수님,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십니다." 하고 외쳤다.
25 그래서 예수께서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하고 꾸짖으시자 26 더러운 악령은 그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켜놓고 큰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27 이것을 보고 모두들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이것은 권위 있는 새 교훈이다. 그의 명령에는 더러운 악령들도 굴복하는구나!"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28 예수의 소문은 삽시간에 온 갈릴래아와 그 근방에 두루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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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성공회기도서


살아계신 하느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의 연약한 본성을 주님의 은총으로 도우시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크신 은총과 영광을 깨닫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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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惡靈)을 추방하는 주님의 권위 (마르 1:21-28) 

20세기 위대한 성공회 변증가 C.S. 루이스는 사람들이 악마에 관하여 갖기 쉬운 잘못된 태도 두 가지를 지적했습니다.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를 믿되 불건전하게 지나친 관심을 쏟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성공회 교인 숫자보다 더 많은 무속인들이 성업^^중입니다. 케이블방송마다 한가지씩은 귀신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작가의 대본에 따른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들은 모두 실제 현상에 대한  "사실" 보도로 오해하기 십상입니다. 문제가 많은 프로그램인데도 지속되는 것을 보면 그만큼 귀신의 세계가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끈다는 얘기가 됩니다. 무속의 존재가 전부 부정적일리는 없겠으나 대개는 불건강, 불건전한 사이비 이단의 못자리 노릇을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악마와 악령의 존재에 대해 더더욱 바른 견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이 악령을 쫓아내시는 이야기는 오늘의 본문을 포함하여 수없이 많습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이 영험한 무당이셨다”고 표현하면 분노하고 상심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단순한 무당(엑소시스트)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의 악령추방은 단순한 일화가 아니라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느님나라를 이루시려는 주님에게 매우 본질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가 현대인의 지성을 자랑한다고 하더라도 그러니까 악령의 존재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정신병 같은 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악령은 실재합니다. 문제는 그것의 본질이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무슨 푸닥거리로 몰아내는 “귀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령은 성령을 거스르고 훼방하는 존재입니다. 성령을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악령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체험하고 추종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악령도 경험하고 대적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과 악령이 같은 수준으로 대립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한 분 하느님의 주권만이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주권을 거슬러 사람들을 속이고 이 땅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한 존재가 있습니다. 성경의 전통은 그들을 “타락한 천사”, "속이는 영", "참소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악령은 거룩하지 않고 더러운 영입니다.

우리는 보통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 만든 그림이나 영화를 통해서 악령에 대한 이미지를 배웁니다. 하지만 악령의 본질은 고정관념처럼 되어있는 그 외양의 험상궂음이 아니라 그 양심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데에 있음이 중요한 점입니다. 우리는 최근 연쇄살인범들을 통해 평범하고 착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인간 안에 얼마나 흉칙한 악령이 들어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보는 악령을 통해서도 알게 되거니와 선하고 악한 차이는 지식의 수준 문제가 아닙니다. 최고의 지식을 가지고도 악할 수 있습니다. 악한 것은 그래서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입니다. 이 때 영혼의 의미는 육체에 깃들었다가 죽음으로 분리되는 희끄무레한 플라즈마 따위가 아닙니다. 인간의 영혼은 바로 인간의 “양심” 입니다.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에 대해 성경은 다양한 표현을 합니다. 하지만 성서가 말하는 "영적"이라는 표현의 가장 현실적인 의미는 바로 "양심적"이라는 것과 가깝습니다. 너무 시시하다구요? 뭔가 신비하고 황홀하고 기적적이고 엽기적인 일을 경험하는 영적인 차원이 따로 있다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은밀한 것이라도 모르시는 바 없으신” 하느님 앞에 우리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가의 문제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참된 영성입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기괴한 외양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비된 양심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행실을 통해 우리는 그의 상태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악령이 복종하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 때문입니다. 그 권위는 다름 아닌 말씀의 권위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말씀은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말씀으로서 우리가 살아계신 하느님의 자녀로서 스스로의 양심을 돌아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속임수 없는 진리 앞에, 두려움 없는 은총 앞에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 가도록 촉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양심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양심이 불필요한 것처럼, 무가치한 것처럼 운영되는 세상이 바로 악령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지금 우리의 양심이 하느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도록 그렇게 작용을 합니까? “이것저것 알 게 뭐냐, 나 하나 잘 살면 그만이지”하는 마음으로 양심을 무시하는 풍조가 일반적이라면 지금이 바로 악령의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양심을 마비시키는 그 악령을 추방하여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도 마음에 찔림이 없다면, 즉 양심에 가책이 없다면 그는 스스로 참 불행한 인간이고 결국 다른 이에게도 불행을 조장하는 인간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양심을 회복시켜 줍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능력이 됩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은 세상 구석구석까지 퍼져야 합니다.
말씀의 진리와 십자가의 은총과 부활의 능력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온갖 더러운 악령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절대적인 권위인 것입니다. (
2009.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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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령(惡靈)으로부터의 구원
(마르 1:21-28) 

오늘(2006. 1. 29)은 우리 민족의 “설”명절입니다. “설”이란 말은 해의 의미인 “살”과도 통하고, “장이 서다” 할 때의 “개시”의 뜻도 있고, “낯설다”할 때의 “새로움”, 그리고 “섧다”에서 온 “삼가다”등의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음력으로 새로이 바뀌는 시간의 질서 앞에서 조심스레 감사와 소망을 기원하는 민속명절입니다.

명절에 조상에게 감사의 예를 표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영적인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이미 죽은 조상을 기억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신앙인은 단순히 조상을 떠올리고 그 영을 달래는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그 조상과 우리가 하나임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상통의 차원을 누리는 것입니다.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조상제례 문제를 가지고 가족 간에, 종교 간에 갈등의 소지가 있습니다. 사실 조상을 기억하며 예를 표한다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도리어 잘 계승해갈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심할 것은 우리의 제례가 조상을 일종의 “악령”으로 삼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이 너무나 다른 차원의 현상을 보여줌으로 우리는 쉽게 죽은 이의 존재를 낯설어 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도 죽습니다. 죽은 이는 낯선 이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의 친구요 형제요 부모로서 하느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안식일에 회당에 더러운 “악령”들린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먼저 알아보고 “왜 우리를 간섭하십니까?”하고 저항합니다.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예수님께서 그를 내쫓으시자 사람들은 “이것은 권위 있는 새 교훈이다. 그의 명령에는 더러운 악령들도 굴복하는구나!”하고 놀랍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와 차원을 모르는 영이 악령입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 살지 못하여 하느님의 간섭을 두려워하는 영이 악령입니다. 우리는 굳어진 제도와 질서 속에 갇혀 자기중심으로 사는데 익숙합니다. 심지어 종교생활을 하면서도 살아계신 하느님과 무관하게 세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면 아집과 독선, 질병과 두려움, 질투와 미움, 방종과 게으름, 교활함과 비겁함, 궁핍과 좌절과 같은 악령들의 괴롭힘을 받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오시어 악령들에게서 우리를 해방하고 회복시키십니다.
악령 추방은 하느님나라의 시작입니다.
주님은 권위있는 새 교훈으로 우리에게 신령한 복(福)을 내려 주십니다. (2006.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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