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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8년 12월 21일 (대림4주일) 강론초 (루가 1:26-38 수태고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2. 16.


2008년 12월 21일 대림 4주일 성서말씀

사무하 7:1-11, 16

1 야훼께서 사면의 원수를 다 물리쳐주셨으므로 다윗 왕은 궁에서 마음놓고 살게 되었다. 2 그렇게 되자 왕은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이렇게 송백으로 지은 궁에서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모셔둔 채 그대로 있소." 3 나단이 왕에게 아뢰었다. "야훼께서 함께 계시니 무엇이든지 뜻대로 하십시오."

4 그 날 밤, 야훼의 말씀이 나단에게 내렸다.
5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나 야훼의 말이라 하고 이렇게 일러라.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6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던 때부터 지금까지 천막을 치고 옮겨 다녔고, 집 안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7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 동안, 내 백성 이스라엘을 맡겨 보살피게 한 어느 영웅에게 어찌하여 나의 집을 송백으로 지어주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더냐?'

8 너는 이제 나의 종 다윗에게 만군의 야훼의 말이라 하며 이렇게 일러주어라. '나는 양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내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삼았다. 9 그리고 나는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들을 네 앞에서 쳐 없애버렸다. 세상에서 이름난 어떤 위인 못지않게 네 이름을 떨치게 해주리라.

10 또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이 머무를 곳을 정해 주어 그 곳에 뿌리를 박고 전처럼 악한들에게 억압당하는 일이 없이 안심하고 살게 하리라. 11 지난날 내가 위정자들을 시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던 때와는 달리 너희를 모든 원수에게서 구해 내어 평안하게 하리라. 나 야훼가 한 왕조를 일으켜 너희를 위대하게 만들어주리라. 16 네 왕조, 네 나라는 내 앞에서 길이 뻗어나갈 것이며 네 왕위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성모마리아송가(성공회기도서 163쪽)

1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오|며, ∥ 내 마음이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을 |기뻐|합니|다.
2 주께서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으|니, ∥ 이제부터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할 것|입니|다.
3 전능하신 분께서 내게 큰일을 행하|셨으|니 ∥ 주님의 이름 거룩|하십|니-|다.
4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 대대로 구원의 자비를 |베푸|십니|다.
5 주께서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6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습니|다.
7 굶주린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 부요한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8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 주님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9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자비를 |베푸|십니|다.
○ 영광이 |성부|와 ∥ 성|자와|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 그리고 영|원히,|아-|멘  

로마 16:25-27

25 하느님께서는 내가 전하는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통해서,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두셨던 그 심오한 진리를 나타내 보여주심으로써 여러분의 믿음을 굳세게 해주십니다.
26 그 진리는 이제 예언자들의 글에서 명백하게 드러났고 영원하신 하느님의 명령을 따라 모든 이방인들에게 알려져 그들도 믿고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27 이러한 능력을 가지신 지혜로우신 오직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루가 1:26-38

26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진 지 여섯 달이 되었을 때에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시어 27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는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하였다.
29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며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그러자 천사는 다시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31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33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하고 일러주었다.
34 이 말을 듣고 마리아가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자 35 천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들 하였지만, 그 늙은 나이에도 아기를 가진 지가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다. 37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38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본기도> -성공회기도서

<나해>

은혜로우신 하느님, 성모 마리아의 순종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나이다. 구하오니, 우리도 주님의 뜻을 따라,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굳센 소망으로 헌신하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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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신비, 신앙의 신비 (루가1:26-38)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마지막 주간입니다. 오늘 우리는 나자렛의 시골처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예수의 잉태를 예고하는 장면을 읽습니다.

성탄의 은총을 누리려면 “처녀가 홀로 아이를 잉태하는” 동정녀 탄생의 신비를 받아들이는 정도의 믿음은 기본이라는 이야기일까요? “약혼한 부인이 같이 살기전에 누군가의 아이를 잉태하는 셈”이 되는 그 추문(스캔달)과 위험을 기꺼이 감수했던 마리아의 용기를 본받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왜 하필 마리아였을까요?  

오늘 본문을 살피기전에 우선 성경의 기본적인 성격이 오늘날 신문기사처럼 현장 취재를 통한 사실보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사건과 성령강림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고백되고 높여진 후에 그 분의 일생을 돌이켜 회고하며 그 분의 삶과 가르침에서 사랑과 진리를 깨우쳐가려는 교회공동체의 말씀 모음과 말씀 선포가 성경의 뿌리입니다. 

인간의 탄생이야기는 언제 확인되는 것일까요? 수태하는 시점, 태어나는 시점? 간혹 대단히 성공과 성취를 이룬 시점일 수 있습니만, 정확히는 인간이 죽은 시점입니다. 그 죽음이 사람들에게 의미를 갖게되는 시점에 우리는 그 사람의 생일을 확인합니다. 우리의 탄생은 우리의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의 첫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오늘이나 내일, 아니면 먼 훗날이라도 우리는 죽음과 동시에 우리의 탄생이야기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묘비명(墓碑銘)에 우리의 탄생이야기가 실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야기가 왜 특별하냐구요? 그건 바로 그 분의 죽음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무덤이 없으십니다. 묘비도 없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살아있는 고백이 묘비명을 대신할 따름입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사람의 몸으로 오신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하느님나라의 비밀을 가르쳐주셨지.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사랑의 왕국 말이야. 그 분 나라의 사랑과 진리의 빛에 비추어보면 황제가 통치하는 로마제국 따위는 오히려 어둠의 나라에 불과하다네. 그 분이 말씀과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기쁜 소식에 비추어보면 성전과 율법은 오히려 우울한 소식처럼 들릴 지경이라네. 그 분은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넉넉한 자비와 은총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셨지! 로마총독 빌라도와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작당하여 그 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그 분은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셨네. 그 분을 통해 성령을 받아 우리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하게 되었다네! 자, 우리 주님의 탄생이야기를 들어보려나?”

이 맥락 속에서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천사가 알려주는 것처럼, 성령에 의해서, 동정녀에게 잉태되어 이 땅에 태어나시게 되었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이 그 자체로 신비한 기적이기 때문에 그로인해 예수가 그리스도로 인정받게 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도 동정녀 탄생을 믿느냐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물론, 황우석 박사의 우연한^^ 업적으로 과학적으로도 “처녀생식”의 가능성이 확보되었으니 동정녀 탄생을 믿는다고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동정녀 탄생을 의심없이 믿는다고 해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 신실하게 믿는 더 훌륭한 믿음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신실한” 믿음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믿음에 가깝습니다.
또 예수님의 탄생이 “동정녀 탄생”이라 하니 인간의 성은 역시 추한 것이고 아직 오염되지 않은 처녀성이 소중한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성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축복이고, 역사적으로 처녀성을 중요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을 소유물로 보는 시각을 반영합니다.
인간의 “동정성”은 좀 더 영성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정결은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을 뜻합니다. 마리아는 온전히 온 존재로 하느님을 지향하는 인간으로서 “동정녀”이신 것입니다. 그 분의 동정성은 하느님을 받아들이기에 완전한 존재로서 흠 없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좌우간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경험하고 신뢰하고 고백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이유로, 어떤 내용으로 그 고백을 이어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마리아의 이야기는 우리의 그 본질적인 신앙고백을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를 통해서 다시 확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천사는 성전도 궁궐도 저택도 아닌 시골동네 처녀의 집에 찾아와 인사합니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며, 그런데 천사의 발현 자체에 놀란 것은 아니니 도리어 그 강심장이 신기합니다만^^, 자신에게 전해진 이 인사말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시골처녀인 자신이 무슨 이유, 무슨 자격, 어떤 능력으로 이 놀라운 인사말에 부합할 수 있겠습니까?

천사는 다시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확인하며 “아기”를 가져 “아들” 예수를 낳을 터이고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 되어 자신에게 맡겨진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리라고 예언합니다. 익숙한 역사 드라마로 비유하자면 상궁이 빈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시골 처녀가 황후가 되리라는 수준입니다.

마리아는 순진하고 정직합니다. 자신이 남자를 모르는 처녀임을 의식합니다. 천사의 대답은 그 일은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질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들 하였지만, 그 늙은 나이에도 세례요한을 잉태하게 된 친척 엘리사벳을 예로 들며 결정적인 한 방의 말씀을 매깁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그러자 마리아는 하느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응답합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왜 하필 마리아냐”는 질문은 여기서 답을 얻습니다. 이 대답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이제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닙니다. 모든 신앙인의 모본입니다. 어쩌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어머니입니다. 성경은 후대에 “하느님의 어머니”로 높여진 그 마리아가 천사를 만나 수태고지를 듣는 장면을 루가라는 신실하고 분별력있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눈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우리는 네 마디 말씀을 추려 낼 수 있습니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네 마디의 말씀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세 마디는 하느님께서 전달자를 통하여 전해주시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한 마디가 우리의 몫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동정녀 탄생을 “사실”로, “머리”로 믿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동정녀 탄생이 가능했던 그 신앙의 “신비”를 “가슴”으로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과 머리에서 “예수가 우리의 그리스도시요, 주님이시다”는 고백이 나오지 않습니다. 신비와 가슴으로 우리가 우리 안에 간직한 “말씀에 대한 응답”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 가운데 현존하시도록 해줍니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시는 성탄의 신비는 두 가지 진리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 생명의 탄생과 우리 믿음의 탄생입니다.

우리 생명의 탄생은 우리 죽음의 순간과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태몽은 우리 모두의 수태고지입니다. 우리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묘비명에 쓰여지기 시작할 우리의 탄생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거기 하느님의 뜻을 말씀할 여지가 있습니까? 우연입니까? 혹시 엄마, 아빠가 실수해서... 이따위...^^ 그것은 바로 우리의 ‘부활’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죽음’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탄생’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태어나 살고, 죽어 돌아가기까지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탄생은 동정녀 마리아 성모님을 본받을 일입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잉태하는 놀라운 사건은 할머니탄생, 할아버지탄생, 유부녀탄생, 유부남탄생, 동정녀탄생, 소년탄생 모두 가능합니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네 마디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십시오. 그 신앙의 신비가 생생히 오늘 나에게도 이루어지는 일임을 믿으십니까?

이제 오늘 성체성사를 통해서 우리는 그 신앙의 신비를 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성탄의 신비, 육화의 신비가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 성체와 보혈의 신비로 연결지어 표현되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생명과 믿음과 삶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을 누리는 일이 곧 구원입니다.
그 구원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 가운데서 우리는 기쁨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성탄의 신비, 신앙의 신비로 저와 교우님들의 삶을 축복하고 또 축복합니다. ✠(200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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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인의 믿음을 통해 오시는 그리스도
(루가1:26-38) 

성탄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진실이지만 사실자체에 대한 보도가 아닙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려는 의지가 우리 인간들의 노력이나 추구보다 항상 더 우선하고 확실하고 치열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저 멀리 머물러 계시지 않고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느님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멸망하도록 버려두시지 않고 기어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죄악이 가득한 세상의 한 가운데로 몸소 뛰어드신 것입니다.
성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절대적인 은총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말씀, 천사에게서 예수님의 수태를 예고 받는 마리아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점은 처녀성의 가치를 높이거나, 동정녀 잉태의 신비 자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우리 인간의 구원은 인간 스스로의 생산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과 능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되는 일이 없다.”(루가1:36)
그리고 마리아의 태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과 계획은 인간들의 간절한 소망을 통해서 전해지고, 또한 사람들의 응답과 순종에 의해서 실현된다는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기다리지 않는 이에게 하느님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이에게는 하느님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모하는 이에게 하느님은 임마누엘의 하느님이 되십니다.
하느님의 계획에 따르는 이에게 하느님은 기쁘게 구원을 허락하십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1:38)

마리아의 순종하는 믿음을 본받아야 우리의 심령 가운데에, 그리고 우리의 이웃과의 관계 속에 하느님께서 강생하실 수 있습니다.
이천 년 전 성령께서 마리아의 몸에 예수를 잉태케 하였듯이, 오늘도 성령께서는 우리들의 순종하는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강생하시어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주님이 되시도록 합니다. 이 일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동의는 죽음의 돌팔매를 각오한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당연히 세상의 인정과 존중을 받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의 강력한 믿음을 이용해서 세상이 인정할만한 업적을 내야한다고 유혹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주님으로, 우리 심령의 구원자로 모실 뿐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느님은 인간의 그 어떤 업적보다도 위대한 일을 하실 것인데, “하느님나라”의 성취가 바로 그 일이기 때문입니다. (200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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