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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8년 5월 18일 (성삼위일체주일) 강론초 (마태 28:16-20 제자들의 사명)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5. 17.

성 삼위일체(聖 三位一體), 사랑의 관계 

“환원주의(還元主義)”라는 어려운 말이 있습니다. (사실 어려운 “개념”이나 “이론”도 본래는 더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쉽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생깁니다. 조금만 어렵게 느껴지면 “골치아프다” 고개를 흔들며 “어려운 것은 죄악이다. 진리는 단순한 것이다.”고 주장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대개는 그 어려운 말들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됩니다.)  

환원주의는 “다양한 현상을 기본적인 하나의 원리나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을 뜻합니다. 단순하고 명쾌한 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매력을 느낍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합니다. 환원주의의 눈에는 아름다운 미인도 앙상한 해골로 보일 뿐입니다.^^  

“믿음이 중요하지 교회가 무슨 필요인가?”“복음이 소중하지 성공회가 무슨 소용인가?” “하느님이면 그냥 한 분 하느님이지 복잡하게 무슨 삼위일체 교리야?” 이런 생각이 바로 우리가 조심해야 할 환원주의적 사고의 일종이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정리하는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three persons)이지만 그 하나의 본체(One substance)이시다”는 설명은 4-7세기의 논쟁에서 그리이스 철학 개념을 빌린 것이어서 오늘 우리에게 분명하게 와 닿는 설명은 아닙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가 표현하고, 정리해서 지키려고 했던 신앙의 체험은 매우 풍성한 내용이 있고 고민이 있고 진실이 있습니다.
“쓸데없이 복잡한 설명은 몰라도 된다^^” 하고 그 내용까지 모조리 무의미한 것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바울로 사도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하고 기원하는 말씀을 듣습니다. 

삼위일체의 중요한 내용은 우리의 하느님에 대한 경험과 고백입니다. “하나이냐 셋이냐” 하는 것은 우리들의 생각이요 개념의 일입니다. 그런 개념들이 하느님의 신비를 파악하거나 좌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절대적인 초월자요 신비 자체이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관계”를 맺어주심을 경험합니다. 추상적이고 추론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과 믿음으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영과 삶을 통한 관계, “영적으로 참되게” 맺는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바로 “하느님과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영이시고 예수님은 성령의 사람이셨고 우리도 영적인 존재임을 압니다. 우리는 성 삼위의 신비와 사랑 안에 일치됩니다.

삼위일체의 중요한 가르침은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랑”이시라는 점입니다. 그 사랑이 고정된 실체의 일이 아니라 역동적인 “관계”의 일임을 삼위일체 교리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그 사랑의 관계, 삼위일체의 신비를 삶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2008년 5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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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삼위일체(聖 三位一體) 

“삼위일체” 교리는 4세기부터 7세기에 걸쳐 그리이스 철학 개념을 가지고 사유하던 당시의 신학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하느님 아버지와 어떤 관계 안에 있는지를 알아듣기 위해 오래 동안 고심하고 논쟁한 결과로 확정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세계에는 그런 철학도 없고, 그런 논쟁도 없기에 세 분이 한 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어려운 이론으로 빠져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하느님이 역사 속에서 세 개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은 아버지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삶을 베푸시는 분, 자비와 사랑의 원천이십니다.

그 하느님께서 예수라는 한 사람의 인격 안에, 그의 삶 안에 구체적으로 당신의 자비와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것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깨달아야 할 자비와 사랑, 그리고 그것을 누리는 삶의 실천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자비와 사랑을 배워서 새로운 도전과 실천을 하는 우리 안에 하느님은 성령으로 혹은 숨결로 살아 계십니다.

삼위일체는 하느님 신비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위한 말입니다.

하느님과 관계된 세 개의 이름(성부, 성자, 성령 곧 창조주, 구세주, 협조자)이 있고 그 이름들은 모두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말합니다.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이 우리의 원천이시고, 그 자비와 사랑을 구체적으로 삶으로 살아 보여주신 예수님이 계시고, 우리 안에 그 자비와 사랑을 발생시키는 성령이 계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도 성령도 그 구원이 우리 안에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다음으로 높은 제2인자가 아니고 성령은 기적을 행하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게 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우리 안에 살아 있게 하는 이름들입니다.

“삼위일체”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당신의 자비와 사랑을 우리 안에 발생시키고 그것이 숨결과 같이 살아 움직이게 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2002년 5월 26일/ 이제보니 천주교 부산교구 서공석신부님의 강론을 요약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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