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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8년 5월 4일 (부활7주일) 강론초 (요한 17:1-11 제자들을 위한 기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5. 4.

요한 17: 1-11

1 이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주시어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주십시오.
2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모든 사람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고 따라서 아들은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게 되었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4 나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다 하여 세상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5 아버지, 이제는 나의 영광을 드러내주십시오. 세상이 있기 전에 아버지 곁에서 내가 누리던 그 영광을 아버지와 같이 누리게 하여주십시오."

6 "나는 아버지께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뽑아 내게 맡겨주신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분명히 알려주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이었지만 내게 맡겨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과연 아버지의 말씀을 잘 지키었습니다. 7 지금 이 사람들은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8 나는 나에게 주신 말씀을 이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였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참으로 깨달았으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었습니다.

9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세상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이 사람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입니다. 10 나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며 아버지의 것은 다 나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로 말미암아 내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11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지만 이 사람들은 세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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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아는 일이 영원한 생명 (요한 17:1-11)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 주시어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영광”이란 말을 세상의 평판에 비추어 생각합니다. 세상이 인정하는 출세와 부귀와 명예를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들의 영광”은 왕위에 오르는 대관식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십자가에 달려 고통과 멸시와 고독 속에 목숨을 바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하느님께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고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신앙적 열심과 헌신을 바치면 하느님께서 합당한 보상을 해주시라고 기대합니다. 우리가 소원하는 것을 얻는 일이 “축복”이고 죽은 후에 영혼이 천국에서 오래오래 지내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악한 자를 벌하시고 이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바꾸어 주실 것을 소망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세상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우리의 참된 축복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세상의 평판이 영광이 아닙니다. 우리가 깨닫는 하느님의 현존이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진정 하느님을 아는가 하는 것입니다.

매 순간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사를 통해 알려주시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합니까? 우리가 진실로 하느님을 안다면 그 어떤 처지, 그 어떤 경우, 때로 외롭고 가난하고 고통스런 삶일지라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현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밖에서 구하는 무엇이 구원의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 내면에서 깨닫는 하느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아는 일이 구원입니다. 외면적으로 얻는 무엇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알게 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위하여 뽑힌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구원은 이제 우리의 일이 됩니다.
기꺼이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을 몸으로 삼아 주님의 영은 이 땅에 현존하시며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2008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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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요한복음은 서두에서 예수님께서 창조이전부터 성부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시고 육신을 취하여 사람이 되신 성자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대한 이러한 증언을 우리는 조심스럽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칫 우리는 예수님을 절반은 하느님이고 절반은 사람인 분, 그래서 육신은 인간이지만 그 마음과 능력은 신적인 초능력을 가지신 분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성경이 전하려는 예수님의 바른 정체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의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와 똑같은 참 사람이셨습니다. 살짝 겉모습만 인간의 탈을 쓴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예수님은 동시에 완전한 하느님으로 고백됩니다. 그저 인간 중에 빼어난 인간, 훌륭한 인간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 곧 삼위일체 성자 하느님이셨다는 증언입니다.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놀라운 신비와 역설이 있습니다.

부활사건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일으켜진 사건입니다. 사람 예수가 성자 하느님으로 변화된 사건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의 부활사건은 곧 주님의 승천사건과 통합니다.
주님의 승천 이야기는 예수님이 하늘 공간 어딘가로 들려 올라가셨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이제 죽음에서 일으켜지셔서 성자 하느님으로 인정 되셨음을 말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사건과 승천사건이 전하려는 이 부분,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바로 성자 하느님이셨다는 이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거꾸로 “어떻게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제자들은 성자의 영광을 보았는가, 나아가 성부의 영광을 보게 되었는가”를 정직하게 탐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사건의 전제는 예수님께서 일생동안 늘 하느님과 말씀과 기도로 하나가 되어 지내셨던 그 “일치”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시고자 했던 “하느님의 나라”도,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도,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이중 계명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도 모두 오늘 예수님께서 드리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기도 속에 녹아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성령으로, 기도로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 되는 그 “일치”를 몸소 보여주셨고, 하느님 아버지를 아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주셨고, 우리들 모두가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2005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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