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도 누려야 할 영원한 생명 (루가 12:13-21)
8월 5일(연중 18주일)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예수님께서 부자(富者)를 적대시하고 멀리하셨다고 보는 것은 부자들하고만 친하셨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틀린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원칙은 한마디로 “구원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은총과 진리를 전한다” 는 것 외에는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물 론 “부자가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그 말씀도 “하느님께서 모든 부자를 거절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부자는 하느님을 거절한다”는 의미입니다. 돈이 많은 부자는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는 찬양을 비웃게 되고, 대신 “돈은 나의 힘, 아쉬울 것 없노라!” 하는 법입니다.
우리가 부자이면서도 하느님을 떠나지 않는 복된 신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진지하게 세 가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부자가 되려는 동기, 둘째는 부를 얻고 쌓아가는 과정, 세째는 부자로서 살아가는 처세입니다.
부 자가 되려는 동기가 삶 속에서 자기 안전을 재물로 보장받고, 세상에서 자기 존재를 확대하고 인정받으려는 마음이어서는 안됩니다. 소유가 많고 확실할수록 자기 존재도 영원하고 안전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불필요한 착각입니다.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행복한 삶을 보장합니다. 또한 부자가 되는 과정이 그 자체로 보람 있어야 합니다. 창조적 아이디어와 열심히 흘린 땀으로 좋은 물건과 정성스런 써비스를 제공하여 부자가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의 몫을 내 몫으로 돌려서 부자가 되었다면 자랑할 일이 아니겠지요. 정당한 부와 그렇지 않은 부의 구별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가치(價値)’를 만들어 낸 댓가로 얻은 부는 정당하고, 그만한 ‘유익(有益)’을 끼치지 못하고서도 조건을 조작하거나 편승하여 부를 얻었다면 이는 부당합니다. 무엇보다 부자가 되었으면 부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부자다움은 많은 소유 자체가 아니라 그 재산을 필요한 곳에 알맞게 쓸 수 있는 능력으로 드러납니다. 자기를 위해 더 큰 창고를 짓는 대신, 더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이가 참된 부자입니다.
돈, 재물은 필요하고 좋은 것입니다. 잘 모은 재물은 축복입니다. 하지만 잘못 모은 재물, 나누지 않는 재물은 저주이고 재앙입니다.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삽니다.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생명’이란 나라는 개체가 안 죽고 한없이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찰나의 인생인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사랑 속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표현입니다. 부자는 죽기 전에 자기의 재물로써 ‘영생(永生)’을 사야 합니다. 부자는 괴물도, 신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 영생을 누려야 할 ‘사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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