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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나눔

공동기도서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by 분당교회 2017. 12. 10.

공동기도서는 잉글랜드 성공회가 로마 교회로부터 분리되었던 종교개혁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헨리 8세 시대,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토머스 크랜머는 예배를 집전하기 위해 성직자들에게 필요했던 수많은 책과 자료를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 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고,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 권의 책으로 대체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1549년에 출판된 공동기도서입니다. 


라틴어가 아닌 영어로 되어 있었던 이 책은 놀랍고 획기적인 작품으로서, 대중이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교회의 예배가 이루어지길 바랐던 크랜머의 뜻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초판 서문에서 크랜머는 기도서가 지닌 명료함과 용이함에 관해 “이 책과 성서 이외에 어떤 것도 공적 예배에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습니다.


공동기도서 초판, 특히 1552년 개정판은 크랜머의 사상에 담긴 강한 프로테스탄트적 요소를 보여줍니다. 크랜머는 잉글랜드가 가톨릭의 성사적 관행과 전통적인 주교-사제의 구조를 유지할 것임을 보였지만, 그의 기도서는 많은 불필요한 내용과 중세로부터 수백 년간 축적되어 온 과장된 부분을 포기하였습니다. 크랜머는 또한 아침기도(조과)와 저녁기도(만과)를 중시하며 실제로 이를 주일 감사성찬례를 대체할 정도로 잉글랜드의 깊은 수도원적 전통을 존중하였습니다. 이후 두 개의 개정이 추가로 있었으며 후기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맥락을 반영하는 1662년 판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기도서로 남아 있습니다.   


(토마스 크랜머 캔터베리 대주교)


이후 잉글랜드에서는 끊임없는 개정의 전통이 이어집니다. 새 기도서를 활용한 20년간의 실험을 거쳐 ‘공동 예배”Common Worship이라고 이름을 붙인 기도서가 공동기도서를 (대체가 아닌)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승인되었습니다. 이 ‘공동 예배’는 “공통된 틀과 구조 안에서 사용하기 위해 다양한 기도와 전례 자료를 제공하고자 기획된 일련의 책”입니다. 이처럼 기도서는 일치와 친교의 상징일 뿐 아니라 연속성과 융통성을 보여주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봅시다] 예배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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