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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자비심 없는 죄

by 분당교회 2016. 9. 26.

자비심 없는 죄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마태 19:24)


예수께서는 부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신 것일까요? 부자와 재물에 대한 경고는 항상 엄중할 뿐만 아니라 재물을 하느님 나라의 적인 것처럼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물론 탐욕스럽게 재물을 모으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경우야 말 할 것도 없지만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별다른 이유 없이 지옥의 불길 속으로 던져진 것 같습니다. 부자는 화려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지 라자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웠다고 했습니다. 부자는 무슨 죄를 지었을까요? 그리고 라자로는 천국에 갈만큼 선행을 했는가요? 


(부자와 라자로, 레안드로 바사노, 1595년)


하느님 나라가 무슨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자로는 구원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지금 슬퍼하고 굶주리는 사람이 그 나라에 갈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으니 이 부분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왜 그런 은총에서 배제되어야만 하고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만 할까요? 성서에는 그가 악인이라거나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법률적으로 보면 그는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소유의 재산이 주는 풍족함을 누린 것에 불과하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돈 자기가 마음대로 쓰는데 뭐가 문제 될 것이 있느냐?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 즉 자비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성서의 메시지입니다.


부자의 옷은 일하는 사람의 옷이 아닙니다. 권위와 사치의 상징입니다. 일주일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라고 하는 율법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하지 않는 죄일까요? 그것이 지옥의 불구덩이로 던져질 죄라고 보기에는 과하다는 느낌입니다. 


부자는 자기 집 대문간에 앉아있는 라자로에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라고 호통 치거나 하인들을 시켜 옮기지도 않았습니다. 불평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으면서 연명하는 라자로에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죄라면 죄일 것 같습니다. 무관심의 죄 또는 무자비의 죄입니다. 부자는 라자로가 거기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마치 산에 나무가 있고 개울에 물이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거지가 앉아서 비참하게 연명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겼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가 호화롭게 사는 것 역시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처럼 여겼겠지요. 그에게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신음과 호소를 들을 귀가 없었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노래와 악기의 소리를 들을 귀는 있었겠지요. 그에게는 개들까지 몰려 와서 라자로의 종기를 핥는 모습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호화롭고 값진 옷의 빛깔과 맵시를 보는 눈은 있었겠지요. 재물이 퍼뜨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걸리는 중병입니다. 


그는 그의 마음속을 울리는 양심의 소리, 하느님의 품성에 무감각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담아주신 자비심이 말라버린 사람입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재물 중심으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점점 하느님의 소리와 품성을 외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현명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는 무엇을 했기 때문에 지옥으로 던져진 것이 아니라 그가 할 일을 안했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보는 쪽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살필 기회도 있었고 또 눈앞에 나타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켜서 프랑스를 침략했을 때 레지스탕스의 저항이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한 젊은이가 외칩니다. ‘나는 죄가 없습니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억울합니다!’ 그 뒤에 따라가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죄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죄요!’ 학살과 전쟁의 미치광이 히틀러가 조국을 침략해서 지배하고 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지옥의 불구덩이에 던져질 만큼 큰 죄를 짓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자비심 없이 산 죄,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기회를 수 없이 주어도 그것을 행하지 않은 죄를 묻는다면 어찌할까요?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9월 18일 연중 25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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