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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소식

(옮김) 초보 농사꾼 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30.

    

                                       
                                   
                                           초보 농사꾼 일기

                                                                             김 태 우(암브로스)

 오늘도 밭에 나와 잡초를 뽑고 물과 비료를 주며 서툴게 농부의 흉내를  내고 있다. 구월도 중순을 넘어 초가을로 접어들었는데 한낮의 햇볕은 유난히 따갑고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내가 좋아서 벌인 일이지만 허리도    아프고 너무나 힘들다. 그러다가도 나를 의지해 자라고 있는 눈앞의 푸른 야채들을 바라보면서 위안을 삼는다.

 지금은 상추. 쑥갓, 토마토, 옥수수 등을 수확한 데 이어 새로 씨를 뿌린  김장용 무, 배추와 고구마, 토란, 호박 등이 한밭 가득하다. 초보자가 늘
그러하듯이 이것도 심고 저것도 심어 보자는 동업자들 의견에 따르다 보니  가꾸는 작물만도 무려 25가지가 넘는다.

 나는 지난해부터 교회(대한성공회 분당교회) 교우 몇 명과 함께 350여 평의 텃밭을 가꾸고 있다. 우리 딴에는 교회의 청소년과 어른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하는 농사일을 통해 자연과 생명 그리고 땀의 소중함을 스스로 체험해 보자는 사뭇 낭만적인 생각으로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텃밭의 이름도 거창하게 ‘생명사랑 나눔 농장’으로 지었다.

 지난해 봄 우리들은 말 그대로 청운의 뜻을 품고 밭으로 나갔다. 미리 몇 번 답사를 하기는 하였으나 경기도 광주의 오포읍에 위치한 그 밭은 임야인 지목(地目)에서 보듯 경사도 심하거니와 순전히 돌밭이었다. 게다가 주변에 거주하시는 노인들이 10-30평씩 농사를 지으면서 캐어낸 돌로 이웃 밭과 경계 둑을 쌓아놓고  있었다. 장비 없이 삽과 괭이로만 밭을 일구며 돌을
골라내는 일이란 우리 풋내기들에겐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우린 돌을 치우는데 만도 여러 주말을 바쳐야 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교우들이 근육통과 몸살을 호소하곤 하더니 끝내는 농사꾼 대열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의욕만 앞세워 일을 서둔 나의 불찰로서 지금도 이들에겐 미안할 뿐이다.

두 번째 사업은 비바람을 피하기 위한 집을 짓는 일이었다. 우린 밭 동편 언덕의 잣나무 밑에 비닐집을 지었고, 집 앞에는 예닐곱 평의 마당도 마련하였다. 한 친구는 평상(平床)을, 한 친구는 의자와 찬장을, 나는 마당에 레저테이블을 들여 놓았다. 비록 화물용 팔레트 밑받침으로 마루를 깔고 이중의 비닐과 태양 그물로 지붕을 씌운 비닐하우스였지만 우리에겐 훌륭한 쉼터가 되어 주었다. 땀 흘려 일하다가 잠시 평상에 둘러 앉아 스스로 가꾼 푸른 밭을 내려다보며 나누는 한 사발의 막걸리 맛이야말로 꿀맛이었다. 고대광실 대청마루에 가부좌 틀고 앉아 감로수를 마신대도 이보다 시원할 수가 있으랴. 



 이런 저런 어려움 속에서도 밭은 날로 모양새를 갖추어 가며 차츰 푸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우리들은 자신이 땀 흘려 일군 밭에서 딴 오이, 토마토 등을 안주 삼아 나누는 막걸리 한 잔에 어제의 수고를 잊으며 열심히 일하였다. 너른 채전 가운데 서면 마치 내가 큰 농사꾼이라도 된 양 스스로가 대견하였다. 용케도 알아차린 벌, 나비들이 마치 꽃잎이 흩날리듯 하늘에서 무리지어 내려온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인양 생경하다. 그러고 보니 꽃과    벌 나비, 새소리와 흙내음을 잊고 산 세월이 참 오래도 되었구나!

 유월 어느 가문 날에 샘터에서 물을 길어다 야채밭에 주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고, 우리는 서둘러 비늘집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게 되었다.
그런데 밭 가운데 평상에 앉아서 보는 그 날의 소나기는 평소의 소나기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각각 모양새를 달리하는 작물들이 키 큰놈은 큰 대로 키 작은 놈은 작은 대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바람에 흔들리며 소나기와 어울려 수런거린다. 그 모습이 내 눈과 귀에는 하늘나라의 물주기에 채마밭이 온통 환희에 들떠 생명의 아우성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것만 같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오후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보슬비가 내리기시작하였다. 단비를 맞자 시들어 늘어졌던 채소들이 장난치듯 금방 생기를 되찾는다. 바로 그 때 나는 참 재미난 장면을 목도하였다. 커다란 토란잎 위에 떨어지는 보슬비가 작은 방울에서 큰 방울로 자라나서는 이내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맑디 맑은 물방울들이 보석처럼 빛을 내며 산 생명처럼 변신을 하다가는 토란잎에 물기하나 남기지 않고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그 묘함에 심취해 난 옷이 젖는지도 잊은 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우리 모두가 농사 경험이 없다보니 시행착오도 한 둘이 아니었다. 어느 날 밭에 나가보니 잘 자라던 무, 배추, 겨자채가 시들어 널브러져 있었다. 또 어느 날부터는 한창 열매를 맺던 토마토와 가지도 시나브로 죽어갔다. 알고 보니 농약을 치지 않아서 병과 해충에 당한 것이란다. 우리는 꿈꾸던 친환경 무농약 영농방침을 포기해야만 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토마토는 열에 약해 진한 밑거름을 주면 안 된단다. 여름 들어서는 300여주나 심었던 고추가 전멸 하였고 12월 초에는 수확을 앞두고 강추위가 덮쳐 한해의 김장 농사를 모두 망치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힘들고 서툴기 만한 농사일이었지만 나는 지난 2년여 동안 많은 것 들을 배웠고 깨달았다. 농사일 그 자체뿐만 아니라 땀 흘려 일하는 농부의 고생과 보람을, 그리고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그 옛날 학창 시절 여름방학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나는 왜 그리도 밭일이싫었던지. 일이라고 해보았자 감자를 캐거나 참외, 고추를 따거나 백 여 평 김장갈이 정도였는데. 농사에는 씨 뿌리고 거름하고 거두어들이는데 다 그 시기가 있는 것을..... 비록 일꾼을 두고 계셨지만 부모님은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지금은 한 포기의 야채도 귀중히 여기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앞장서서 밭일에 나서면서 말이다.  

 나는 금년에도 열심히 흙을 일구고 있다. 작년에 흘린 땀 덕에 올해에는 돌도 거의 치워졌고 밭이 아주 부드러워졌다. 삽만 대면 예서제서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비닐집 밑바닥에는 멸종 위기라는 족제비 한두 마리도 둥지를 틀었다. 게다가 여간해선 보기 어려워 행운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토란꽃과 고구마 꽃이 한꺼번에 피어나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있다. 지난 봄에는 비닐집 주변에 대추, 자두, 살구 등 십여 그루의 과일 나무도 심었다. 내년에는 우리 밭에서 딴 과일을 나누는 기쁨도 있을 것 같다.

 올해에는 무, 배추를 작년보다도 더 많이 심었다. 나는 오늘도 김장밭을 매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밭 한 가운데 허수아비처럼 서서, 벌 나비 바라보며 산새 소리 들으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본다. 너무 먼 길을 돌아서 온 것이나 아닌지...... 이제야 자연과 생명과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을 알 것도 같다. 오늘 따라 채마밭은 더욱 푸르고 하늘 또한 유난히 파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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