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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공회신문논단원고) 신앙담론의 입체지도가 필요하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9. 6.

(성공회신문 제 708호 (2009. 9. 6) 성공회 논단)

 
 
 

                                신앙담론의 입체지도가 필요하다

- 성공회신학의 중요성
                                                                   

최근 우리 성공회 공동체내에 소통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교계제도의 위계질서가 정직한 소통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었다지만 권위주의가 거의 사라진 요즘도 교회 안에 충분한 신앙적 담론의 소통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서는 아닙니다. 
지난해 서울교구 성직자 워크숍에서는 우리 교회의 정체성과 성장방안등에 대하여 거의 책 한권 분량의 다양한 주장과 견해가 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전달하는 일로 소통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분명히 이해하며 함께 지향하는 바가 찾아져야 합니다.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서로 공통의 개념, 공동의 논거를 가져야 합니다. 각자의 이야기가 어떤 목적으로 어느 정도의 추상(抽象) 수준에서 제시되는가가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겪는 소통의 어려움은 단지 서로에 대한 정서적인 신뢰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입체적인 성공회신학 안에서 신앙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한국성공회에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신앙담론(信仰談論)의 입체지도(立體地圖)' 입니다.

신학은 단순한 지식의 집합이나 축적이 아닙니다.
신학의 역할은 교회공동체 안에서 각자 신앙의 이야기들이 그 생생한 의미를 드러내게 돕는 공동체적 담론의 체계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누구나 마음껏 자신의 신앙체험을 간증하고 고백하고 선언할 수 있되 그것의 객관적인 좌표를 분명히 매겨주어 때로 격려하고 때로 반성하게 해주는 일이 교회공동체가 권위를 가지고 주도하는 신학의 역할입니다.

간혹 듣게 되는 '성공회는 조직신학이 없다' 는 표현은 성공회가 신학의 중요성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공회는 이론적인 신학 자체를 위한 관심이 아니라 교회공동체의 신앙생활을 위해서 모든 신학을 폭넓게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담론의 입체지도를 분명히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할 때에만 의미가 있는 주장입니다.

성서신학의 축과 역사신학의 축 그리고 이 시대의 실천신학의 축이 교차하는 입체적인 신앙담론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평면상에 늘어 놓으면 우리의 많은 신앙 이야기들이 하나마나한 뻔한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또 평면상에서는 실제로 전혀 다른 위상의 이야기들이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는 것처럼 오해되기가 쉽습니다. 신앙담론의 입체지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평면적 수준에서의 자기주장을 신앙적인 소통인 양 착각하기 쉽다는 말씀입니다.

가령 입체적으로 이해하면 가톨릭 정신과 개혁의 정신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곧 성공회의 정체성은 가톨릭이냐 개혁교회냐의 양자택일적인 물음으로 설정될 수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과 성사, 주교직과 만인사제론, 영혼구원과 사회구원등의 신앙담론들 역시 평면이 아닌 입체적 차원에서는 서로 충돌되지 않습니다. 제기되고 강조된 역사적 계기가 다릅니다. 그것들은 평면적인 이해로 양자택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이해 안에서 교회공동체를 위해 서로를 보완해야 하는 담론들입니다.

성공회의 중도는 막연한 애매모호함이나 중간노선이 아닙니다. 성공회의 중도는 성공회가 모든 신앙담론을 입체적인 지도 안에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성공회는 '비아메디아' 라는 신학적 입장을 통해서 이 세계속에서 교회와 신자가 살아내는 모든 신앙적 경헙과 고백과 반성을 자리매김하여 서로 돕고 서로 일치하여 하느님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공동체를 지켜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공회 안에 신앙담론의 입체지도를 마련하는 일에 뜻있고 역량있는 분들이 속히 힘을 모아야 함을 간절히 주장하고 간곡히 청원합니다.

                                                                          -임종호 신부 (프란시스, 분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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