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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9년 7월 26일 (연중 17주일) 강론초 (요한 6:1-21 오천명을 먹이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7. 20.


2009년 7월 26일 연중 17주일 성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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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하 4:42-44
42 어떤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 왔다. 그는 맏물로 만든 보리떡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져왔다. 엘리사는 그것을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먹이라고 하였다. 43 그러나 그의 제자가 "어떻게 이것을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가 다시 말하였다. "이 사람들이 먹도록 나누어주어라. 야훼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44 그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니, 과연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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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 3:14-21

14-15 나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에게 이름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 드립니다. 16 넘쳐 흐르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의 힘을 돋우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17 그리고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가 사실 수 있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감으로써 18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 19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완성되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21 하느님께서 교회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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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6:1-21

1 그 뒤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예수를 따라갔다. 그들은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기적을 보았던 것이다. 3 예수께서는 산등성이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자리잡고 앉으셨다. 4 유다인들의 명절인 과월절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5 예수께서는 큰 군중이 자기에게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사올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것은 단지 필립보의 속을 떠보려고 하신 말씀이었고 예수께서는 하실 일을 이미 마음속에 작정하고 계셨던 것이다. 7 필립보는 "이 사람들에게 빵을 조금씩이라도 먹이자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8 제자 중의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는 9 "여기 웬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10 예수께서 그들에게 "사람들을 모두 앉혀라." 하고 분부하셨다. 마침 그 곳에는 풀이 많았는데 거기에 앉은 사람은 남자만 약 오천 명이나 되었다. 11 그 때 예수께서는 손에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달라는 대로 나누어주시고 다시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하여 나누어주셨다. 12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난 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조금도 버리지 말고 남은 조각을 다 모아들여라." 하고 이르셨다. 13 그래서 보리빵 다섯 개를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제자들이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14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이시다." 하고 저마다 말하였다. 15 예수께서는 그들이 달려들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는 낌새를 알아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피해 가셨다.
16 그 날 저녁때 제자들은 호숫가로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호수 저편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저어갔다. 예수께서는 어둠이 이미 짙어졌는데도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으셨다. 18 거센 바람이 불고 바다 물결은 사나워졌다. 19 그런데 그들이 배를 저어 십여 리쯤 갔을 때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서 배 있는 쪽으로 다가오셨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은 겁에 질렸다. 2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 하시자 21 제자들은 예수를 배 안에 모셔 들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배는 어느새 그들의 목적지에 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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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성공회기도서
은혜로우신 하느님,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과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을 주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말씀이며 영원한 생명의 양식임을 깨닫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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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총과 나눔- 주님께서 먹이신다, 나눠 먹어라!(요한6:1-21)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지금도 제3세계에서는 많은 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갑니다. 우리나라는 굶주려 죽어가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만 여전히 생존경쟁의 스트레스와 상대적인 빈곤감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지구상의 자원은 유한하고 사람들의 욕망은 무한합니다. 능력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제일 쉽고 일반적이지만 무능력한 사람에게는 뭔가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모두 똑같이 나누는 것도 실은 형평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생산의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남보다 더 가져야 행복할 것 같은 욕망도 부족한 재물을 확보해서 나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동기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재물의 그릇, “화수분”의 전설은 모든 민족에게 있습니다. 부족한 재화를 서로 가지려고 경쟁하는데서 생기는 삶의 고통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어쩌면 오늘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주님의 기적이야기는 화수분 이야기의 일종일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충성스럽게 하면 하느님께서 부족한 우리들의 삶에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재물의 축복을 늘 베풀어 주신다는 약속일까요? 신앙은 화수분을 소유하는 일까요?

좋습니다. 믿음이 좋으신 여러분에게 놀라운 화수분을 하나씩 드리지요. 그 화수분은 바로 하느님의 은총 자체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지탱해가십니다. 오늘 복음서가 전하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먹이고 살리시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화수분의 비밀은 더 깊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산물, 용역과 재화는 다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생산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먹이시고 살리시는 그 무한한 은총의 일에 우리의 작은 헌신을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의 도움, 우리의 기여는 말 그대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기십니다.

땀흘려 일해야 하는 삶이지만 이 귀한 인생살이를 그저 부족한 빵을 차지하려는 생존경쟁으로만 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실은 하느님의 은총안에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연을 통해 열심히 각자의 수고를 다하여 우리 서로를 먹이고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둥바둥 나 만을 위해 재화를 욕심껏 차지하고 쌓아놓고 조바심하며 지키는 삶이 행복한 삶이겠습니까? 하느님의 은총을 신뢰하고 우리의 모든 수고가 다른 이에게 유익하게 됨을 기뻐하고 동시에  다른 이의 고마운 수고가 내 삶의 필요를 채워준다는 사실을 진정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이 아닙니까?

우리의 욕망은 무저갱 같고 하느님의 은총은 화수분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는 빵이 저절로 펑펑 불어났다고 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에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달라는 대로 나누어주신”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복음은 우리가 바친 것을 기쁘게 받으시고  무한한 은총으로 되돌려 주시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먹이고 살리시려고 스스로 생명의 빵이 되신 예수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이신 까닭은 바로 우리가 함께 먹고 사는 일은 주님의 은총과 우리의 나눔으로 되는 일임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2009.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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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어떻게 우리를 먹이시는가?
(요한6:1-21)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 기자가 동행취재하여 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 성령강림을 통해 세워진 교회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회상하고 정리하면서 쓰여진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이 점이 분명합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20:31)”

그러므로 성경에서 주님의 기적 이야기는 무슨 현장중계도 아니고, 그저  전해지는 일화(逸話)도 아닙니다. 오로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더 정확히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베푸시고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가를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이를 읽는 우리도 그저 “그 때 그런 신기한 일이 있었군”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그와 같은 주님의 기적을 어떻게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게 중요합니다.
 

오늘 요한복음은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기적이 다만 이천 년 전에 있었던 단 한번뿐인 지나간 사건이라면 사실 생각보다 별로 대수로운 것이 아닙니다. 참 신기하고 대단하다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말입니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은 신기하고 대단한 기적이 아니라 평범한 상식과 자비와 사랑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중요한 까닭은 그 자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이 이야기가 바로 예수님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분이셨는가를 알려주며,  동시에 21세기의 우리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체험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영원히 참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복음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살리시는  분이심을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그 진실을 깨닫고 감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보여주신 것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그 사랑과 자비는 우리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을 감사하고 그것을 기꺼이 서로 함께 나눔으로써 이 세상에 골고루 전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그 일에 헌신하며 기쁨과 행복과 보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신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구원사역을 영원한 현재로 기념하도록 제정하신 것이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때 그 사건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눈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잔치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쪼개서 많은 사람을 먹이고 살리시는 생명의 빵이심을 우리는 경험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2006.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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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빵
(요한 6:1-21)

빵의 문제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합니다. 빵이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족하고서야 예절을 안다” 라는 말도 있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이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어떤 현자는 말하길 “내가 배고픈 것은 경제적인 문제이지만 내 이웃이 굶주리는 것은 내게 영적인 문제이다”라고 갈파한 바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여주신 까닭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바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의 빵>이심을 깨닫도록 하려는데 있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그런데 간혹 지금 우리도 그런 태도를 보이거니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준다는데 혹하여 예수를 왕으로 모시려 들었지만 정작 중요한 <영적인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빵>이십니다. 세상의 빵은 생존경쟁의 빵입니다. 나누면 적어지기에 우선 내가 먼저 먹어야 하고, 나를 위해 독점해두고 다른 사람이 굶주리는 것을 태연해하며, 내 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를 죽이는 것도 마다않는 죽음의 빵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빵은 사랑과 감사와 나눔의 빵입니다.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빵입니다. 자기의 살과 피를 사랑으로 내어주는 빵이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의 빵을 먹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으리라 하십니다. 실제로 우리 모두가 성체성사로 알려주신   주님의 그 사랑을 온전히 우리 삶에서 실천한다면 이 세상에 굶주림과 전쟁은 사라질 것입니다.

“돌로 빵을 만들라”는 사탄의 유혹에 대하여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성경말씀을 인용하신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 자체이신 분으로서 생명의 빵이 되시는 분이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미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받아 모시는 우리의 삶이야말로 참된 구원의 삶임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그 주님의 그 사랑과 진리를 따라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것입니다. (2003.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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