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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7년 11월 25일 (연중34주일/왕이신 그리스도주일/추수감사주일) 설교 (루가 23:33-43)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1. 24.

루가 23:33-43

33 해골산이라는 곳에 이르러 사람들은 거기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죄수 두 사람도 십자가형에 처하여 좌우편에 한 사람씩 세워 놓았다. 34 예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읍니다" 하고 기원하셨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은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35 사람들이 곁에 서서 쳐다보고 있는 동안 그들의 지도자들은 예수를 보고 "이 사람이 남들을 살렸으니 정말 하느님께서 택하신 그리스도라면 어디 자기도 살려 보라지!" 하며 조롱하였다. 36 군인들도 또한 예수를 희롱하면서 가까이 가서 신 포도주를 권하고 37 "네가 유다인의 왕이라면 자신이나 살려 보아라" 하며 빈정거렸다. 38 예수의 머리 위에는 '이 사람은 유다인의 왕' 이라는 죄목이 적혀 있었다.

39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수 중 하나도 예수를 모욕하면서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오? 당신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죄수는 "너도 저분과 같은 사형선고를 받은 주제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가 한 짓을 보아서 우리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저분이야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 하고 꾸짖고는 42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43 예수께서는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 가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감사(感謝)하는 신앙(信仰)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王)이 되심을 기념합니다. 이 기념은 예수께서 왕처럼 막강한 힘과 위세를 지니신 분임을 강조하려는 것이기보다는, 우리 인생의 목적이 "천국"에서 "왕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임을 되새기려는 것입니다. 천국이라니까, “육체를 떠난 영혼이 생전의 믿음과 선행을 인정받아 들어가는 하늘의 이상향”으로만 너무 좁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천국의 본래 참뜻은 그런 이미지, 즉 즐겁고 행복한 낙원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느님의 다스림"안에 있으면서 무한한 사랑을 누린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하늘에 있는 이상향이어서 천국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이기에 천국입니다. 하느님나라를 이어받으신 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의 다스림, 그 사랑과 평화의 왕국이 우리 마음 안에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이 땅의 세상에서 가능하도록 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가운데 참사람으로 오시어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된 삶의 경지를 보여주셨고 이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과 우리를 향한 계획을 깨닫도록 해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은 부활을 통해, 하느님 안에서의 죽는 사람은 허무한 절망이 아니라 사랑의 승리를 맛볼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가질 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보내주시어 우리가 성령의 힘에 의지하여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가도록 해주셨습니다.

오늘을 우리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거니와 우리의 감사는 주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좋은 것"을 주신데 대한 고마움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구원에 비하면 무엇을 얻고 잃는 것은 어쩌면 작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감사는 하느님께서 참으로 벌레 같은 우리를 정말 놀라운 사랑으로 돌보시고 이끌어주신다는 그 신비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가 덧없는 인생이 아니라 열매가 풍성한 인생이 되게 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에게 현상적으로는 고난과 시련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속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의 하느님은 늘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가 주님의 형상을 이룰 때까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형성될 때까지 인도해주신다는 데 대한 감격입니다. ✠ (2004. 11. 21)


왕되신 주님께 감사! (루가23:33-43)

오늘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王)이 되심을 기념합니다. 예수께서 절대군주처럼 막강한 힘과 위세를 지니신 분임을 강조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이 사랑과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 있다는 고백입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정치범으로 몰려 무력하고 무참하게 죽으신 예수님은 분명 이 세상이 기대하는 차원의 왕은 아니었습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그리스도가 있는가? 믿기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는 이상한 그 ‘그리스도’라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며 세상은 무수한 조롱의 말을 늘어놓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새로운 차원의 왕이셨는데 그 신비를 깨달은 이는 역설적으로 예수님 십자가 옆에 달린 강도였습니다.

우리는 그 강도가 마지막 숨을 모아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기억해주십시오” 한 고백을 듣습니다. 그리고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는 주님의 약속을 듣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 고백을 드리고 그 약속을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우리의 일생은 이 고백과 그 약속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강도는 엄청난 행운의 사나이입니까? 이 강도처럼 제 멋대로 일생을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여 구원을 받는 일은 어째 좀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구원의 본질을 생각해봅니다. 구원은 낙원에 들어갈 자격입니까? 강도는 예수님께 믿음을 잘 고백해서 그 자격을 얻은 것일까요? 믿음은 입으로 그런 고백을 잘하는 일일까요? 구원받은 강도가 보여준 것은 새로운 통찰력을 통하여 새롭게 관계를 맺는 능력입니다. 십자가 주위의 사람들은 그동안의 고정관념으로 예수님을 조롱하기에 바빴지 새로운 관계에 자기를 개방(開放)한 이는 없었습니다. 우리도 과연 죽음의 순간까지도 새로운 통찰, 새로운 관계에 생각과 마음을 열 수가 있을까요? 강도의 구원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올바로 깨닫고 응답한 마땅한 결과입니다.

‘낙원’은 단지 이상향(理想鄕)이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다스리시기에 낙원입니다. 예수님은 그 낙원의 새로운 왕이십니다. 하느님의 다스림, 그 사랑과 평화의 왕국이 우리 마음 안에, 우리의 삶 가운데, 이 땅의 세상에 가능하도록 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사랑의 왕국은 “하늘에서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하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나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는 우리의 감사와 찬양의 촛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건강과 평안, 소원성취, 만사형통도 감사할 일이지만, 우리 삶의 모든 계기와 시간 속에 “예수님의 왕되심”이야말로 우리 감사의 깊고 풍성한 내용인 것입니다.✠ (200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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