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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가정주일

by 분당교회 2017. 5. 7.

2017년 5월 7일 성공회 분당교회 설교, 김장환 엘리야 신부

가정주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깨어진 가정이 많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결손 가정 아이들, 무의탁 어르신처럼 꽃을 달아주려 올 자녀가 없으신 외로운 어르신들이나 3년 전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 등. 가정주일예배를 드리면서 먼저 이렇게 외롭고 슬픈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울러 지난주일 말씀처럼 그들 “곁으로” 다가가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 10:10, 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예수님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단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참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축복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두 개의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가정과 교회입니다. 이 두 개의 공동체는 온전히 우리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주님이 선물로 주신 것들입니다. 하여 건강한 교회, 행복한 가정을 세워가는 것은 우리 인생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구체적으로 가정에 적용한다면, 오늘 드린 본기도처럼, 우리 가정이 “화목과 기쁨이 넘치는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어 우리 가정을 통해 천국을 경험하고 누리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천국을 경험하는 가정, 천국을 확장하는 가정!” 


천국을 경험하고 확장하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보 2면에 나와 있는 시편 128편의 말씀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복되어라, 야훼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 너의 집 안방의 네 아내는 포도알 푸짐한 포도나무 같고 밥상에 둘러앉은 네 자식들은 올리브 나무의 햇순과 같구나.”


하느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가정의 개념이 부부, 부모와 자식 등 기존의 파라다임이 아니라, 싱글 가정, 조손가정 등 여러 형태의 넓은 개념으로 넓어졌습니다. 그 어떤 가정의 형태이든지 야훼를 경외하는 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축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어떤 신앙의 원리로 살아가는 걸까요? 


오늘 1독서인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말씀은 이 땅에 세워진 교회의 원형을 보여주면서 건강한 교회나 행복한 가정을 세워감에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서 건강한 교회, 행복한 가정을 세워가는 지혜를 배워 예수님의 말씀대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느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사는 가정”입니다. 

교회에 대한 첫 언급이 42절,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곧 하느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가정을 작동하게 하는 삶의 기준과 가치가 하느님의 말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를 교육할 때 중심 가치와 철학이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어떤 것을 가르쳤을까 몇 가지 생각해 봅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이 구원자시고 주님”이시라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가정이나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나 자녀나 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2) 사도들은 예수님이 선포하시고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배우고 경험한 하느님 나라를 가르쳤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쳤을 것입니다.

3) 예수님이 말씀하신 새 계명이며 하느님 나라의 윤리가 되는 “서로 사랑하는 삶”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분의 삶과 십자가로 확증해 주신 사랑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세워갔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떤 가치와 기준으로 세워져 있는지요? 어떤 가치와 철학으로 자녀들을 가르쳐왔는지요? 이 질문은 곧 여러분이 지닌 인생관과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가 보인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정의 주인이 하느님이시고 생각과 판단의 가치 기준이 하느님의 말씀이며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가 하느님의 나라라면, 여러분의 가정을 통해 천국을 경험하고 여러분의 가정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전수될 것입니다.


둘째, 하느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예배”를 최우선순위로 사는 가정입니다.

42절의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46절의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어 먹었다.” 47절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는 말씀은 모두 하느님을 예배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들입니다. 


“빵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성체성사를 말합니다. 설교를 듣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찬을 나누며 기도하고 찬양하는 일이 교회의 첫 번째 존재이유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주님을 예배하는 일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예배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그분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기에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됩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첫 번째 신앙의 원리 –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는 것이 전제일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하느님은 그 분을 경외하고 그 분을 신뢰함으로 예배하는 자의 삶을 하느님이 책임지십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는 존귀한 삶을 살게 할 것입니다.


셋째, 하느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재정 사용의 원칙이 분명합니다. 

오늘 1독서에서 가장 도전이 되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사도 2:44-45, “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45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사람이 좋으면 매일 모여도 좋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모여 하느님을 예배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은 재정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로 나타납니다. 


초대교회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것을 팔아 사도들의 발에 갖다 놓고 필요에 따라 사용함으로 4장에 보면, 공동체 내에 궁핍한 사람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확증하고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순종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 물질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성찬예배 때마다 봉헌기도를 이렇게 드립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므로 내가 받은 것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이 기도는 내 물질도 하느님이 주신 것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재정관과 재정 사용의 원칙이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온전한 십일조와 선교구제헌금을 드리는 것을 성경적인 기준으로 가르칩니다. 이럴 때 나머지 재정의 사용도 하느님의 기준으로 행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오늘 시편의 말씀을 읽어봅니다. “복되어라, 야훼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 너의 집 안방의 네 아내는 포도알 푸짐한 포도나무 같고 밥상에 둘러앉은 네 자식들은 올리브 나무의 햇순과 같구나.” 성경이 묘사하는 행복한 성가정의 모습니다. 


야훼 하느님을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가정이란, 하느님 말씀, 즉 복음의 정신과 가치로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하느님께 예배드림이 우선이 되는 가정입니다. 성경적인 재정관을 가지고 청지기로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이 생명을 얻되 풍성한 생명을 누립니다. 서로 사랑하며 화목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모두의 가정이 이런 성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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