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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그리스도인? 산 희망으로 사는 존재

by 분당교회 2017. 4. 23.

2017년 4월 23일 부활 2주일

그리스도인? 산 희망으로 사는 존재

(설교 : 김장환 엘리야 분당교회 관할사제)


1. 할렐루야!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전하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분은 아멘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갸우뚱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의심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신비의 영역입니다.


2.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어제 복음 마르코복음 16장이었는데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첫 증인인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믿지 않습니다. 또 시골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제자들에게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믿지 않습니다. 


3.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토마도 그렇습니다. 오늘 읽은 복음의 시점은 두 개입니다. 19절-25절, 전반부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즉 부활주일 저녁입니다. 26절 이하, 후반부는 여드레 뒤, 그러니까 부활 2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날 저녁에 이미 막말라 마리아와 엠마오스로 가던 두 제자의 증언을 듣고도 믿지 않는 10제자를 만나셨습니다.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토마가 없었습니다. 이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 된 10명의 제자들이 토마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말해도 믿지 않습니다. 

25절,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토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4. 우리들 대부분이 토마와 같을 것입니다. 성경에 적힌 하느님이 행하신 일들을 잘 믿지 못합니다. 많은 교회들은 ‘무조건 믿으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믿음의 영역에서 의심과 질문을 잘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질문이 많아진 현대인들이 교회를 멀리하게 되는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믿음은 모험이 불러오는 불확실성 때문에 생겨나는 의심을 내적인 요소로 가는 궁극적인 관심”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의심은 믿음의 반대가 아니라, 믿음의 요소라는 말입니다. 프라시스 쉐퍼라는 영성가는 “솔직한 질문을 하면 반드시 답이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진리는 의심하여도 사실이기에 진리입니다. 


(의심하는 토마, 카라바조 작, 1601-2)


5.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 fact 이기에 진리입니다. 부활밤 설교 때 했지만, 팩트 체크를 다시 해 봅니다. - 빈무덤, 여자증인들, 많은 증인들, 제자들의 변화, 교회의 출현과 부흥, 그리고 2000년 동안 계속 되는 인생들의 변화와 선교 등.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사람들에게 풍성한 하늘의 축복을 누리게 하는 진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토마는 의심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는 가장 정확하고 올바른 고백을 드립니다. 이후 그는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 모두 이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6. 부활의 신앙이 주는 축복을 오늘 서신에서는 한 마디로 “산 희망”이라고 합니다.

1베드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다시 낳아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산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산 희망이 있다면 죽은 희망이 있습니다. 죽은 희망이란, 실현될 수 없는 소망을 붙드는 기대라 할 것 있습니다. 산 희망이란 실재 reality, 실증 evidence가 있고 그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는데 부활과 영생을 말한다면, 사기입니다. 이를 믿는다면 죽은 희망입니다. 


7. 그런데 예수님이 실제로 살아나셨기에,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기에, 그리고 이 사실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처럼 부활하고 영원히 살 것이라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약속하셨기에,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산 희망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산 희망으로 사는 존재들입니다. 이렇게 산 희망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나타나는 특징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8. 첫째 특징은 삶의 목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바라봅니다. 예수님에 대한 기독교의 진리가 몇 가지 있습니다. 성육신, 십자가, 부활, 그리고 재림입니다. 앞에 3가지는 이미 다 성취된 하느님의 일입니다. 이제 나머지 하나 주님의 재림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위대한 신비로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듯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고 그날 받게 되는 상급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9. 그래서 오늘 서신의 베드로전서 1장 7절의 말씀처럼,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받게 될 “칭찬과 영광과 영예”을 삶의 목표로 삼습니다. 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께 받을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가리거나 훼손하게 되는 것들에게는 목표를 두지 않습니다. 산 희망으로 인해 갖게 되는 칭찬과 영예와 영광이라는 목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에 희망을 두는 사람들과 구별시켜 줍니다. 그래서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10. 산 희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나타나는 두 번째 특징은 기쁨을 누리는 삶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돈과 성공에 희망을 걸고 근심과 걱정에 매여 살고 있습니다. 끝내 맞이하게 되는 죽음이 던져주는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산 희망을 품고 인생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해방되어 살아갑니다.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1베드 1:5,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당신의 힘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며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하여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11.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다시 처음으로 만난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말씀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인사였습니다. 평화는 산 희망을 간직한 자들이 소유하는 내적인 안정감입니다. 기쁨은 평화를 간직한 자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표징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강조합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살전 5:16)  


12. 세 번째 특징은 목표의 변화와 내적인 평화와 기쁨으로 인해 선교적인 존재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우러러 모시고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13. 예수님은 오늘 복음 요한복음 20장 23절에서 죄를 용서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제시하십니다.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14. 실제 자신에게 해를 끼치고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행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산 희망을 간직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삶을 살아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받은 은혜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15. 초대교회 첫 순교자 – 스테파노를 보십시오. 자신을 돌로 쳐 죽이신 사람들 위해 예수님처럼 용서를 기도했습니다. 그 감동적인 장면이 사도행전 7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55 이 때 스데파노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아, 하늘이 열려 있고 하느님 오른편에 사람의 아들이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외쳤다. 57 그러자 사람들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스데파노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끌어내고는 돌로 치기 시작하였다. 그 거짓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에게 맡겼다. 59  사람들이 돌로 칠 때에 스데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데파노는 이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죽는 순간 용서를 기원하는 스테파노로 인해 58절에 등장하는 사울이라고 불리던 바우로의 인생이 바뀐 것입니다.


16. 예수님이 말씀하신 “죄를 용서하라”는 말은 “빚을 탕감해 주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실체 초대교회는 물질을 서로 공유하는 성도의 상통으로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는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를 보고 우러러 보았고 날마다 구원받는 신자들이 더해지는 선교가 이루어 졌습니다.


17. 예수 부활이 가져온 산 희망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합니다. 삶의 목표가 달라지면서 평화를 누리는 가운데 이전과는 다른 삶을 기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물어오는 겁니다. 이 때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선교적인 존재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18. 마지막으로 산 희망을 간직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이 계십니다.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숨을 내쉬시며”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사람이 된 창조의 장면과 오버랩 됩니다. 인간은 성령 받지 않으면 육적인 존재로 살게 됩니다. 성령을 받아야 산 희망으로 살아가는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19. 부활절은 성령강림절로 완성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새생명이 성령으로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시며 산 희망을 주십니다.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 주십니다. 성령강림절이 지나면 연중주일을 살아갑니다. 연중주일은 일상의 삶에서 내주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선교적인 존재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20. 이렇게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산 희망으로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세상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거룩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1독서 사도행전 2장 32절의 말씀이 자신의 고백이 됩니다. 

사도 2:32,  바로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으며 우리는 다 그 증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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