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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의인의 죽음

by 분당교회 2015. 7. 14.

의인의 죽음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전하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섬뜩하고도 허망함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보고 여인에게서 난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하다고 할 정도로 요한은 당대의 예언자였습니다. 그렇게 의인으로 여겨진 그의 최후는 매우 엽기적인 죽음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의인이라면 적어도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최후를 맞든, 전사를 하든... 그런 장면을 생각할 수 있는데 요한은 잔치의 희롱거리로서 그의 머리가 쟁반에 받쳐오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악인들은 의인의 죽음을 향연의 도구로 삼는 것일까요? 죽은 사람의 머리를 이 사람 저 사람 돌려가며 갖다 바치는 그 잔치는 즐거울 수 있었을까... 죽은 사람의 머리를 가지고 희롱할 줄 아는 사람들의 심리는 과연 어떤 것일까... 이 엽기적인 잔치를 즐기는 엽기적인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린다고 생각하니 그 시대 민중의 생활상이 대충 그려집니다.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세례자 요한의 이 죽음을 가지고 ‘살로메’라고 하는 유명한 시극을 썼습니다. 살로메는 복음서에 등장하는 헤로디아의 딸입니다. 헤롯과 헤로디아 그리고 살로메는 막장 드라마의 극치를 달리는 것 같이 가족끼리 얽히고 섥힌 근친상간의 불륜관계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헤롯왕이 살로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항상 그 녀를 바라보았으며 음심을 품는 관계로 그렸습니다. 그러나 살로메는 의외로 요한에게 반해서 그를 짝사랑합니다. 그래서 연회 중에도 우물 깊은 곳에 구금되어 있는 요한을 만나러 몰래 나옵니다. 살로메를 짝사랑하는 또 한 사람인 경비대장은 이 모습을 보고서 자살합니다. 살로메는 요한에게 한번만 입 맞추게 해달라고 구애를 하나 요한은 단 칼에 거절합니다. 이에 실망하고 자존심이 상한 살로메는 다시 연회장에 들어가서 매혹적인 춤을 추고 헤롯에게 요한의 머리를 가져다 달라고 청합니다. 은쟁반에 받쳐 온 요한의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는데 살로메는 그 입에 입 맞춥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매우 엽기적인 이 장면을 통해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의 심리,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죽여서라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강한 욕망을 그려낸 것입니다.

어쨌든 세례자 요한은 한 소녀 또는 불륜의 부녀자의 복수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고 머리 없는 시신은 그의 제자들을 통해 장사지내게 되었습니다.

성서에서 세례자 요한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부도덕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의지를 잠시 접어놓고 와의 죄를 모른 체 한다거나, 좋은 소리 한번 해주면 세속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요한은 세상에서 조금 편한 생활을 하고 생명을 연장 시킬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영원히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요한의 이름은 우리가 기억할 수도, 기억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왕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여러 차례 간하였다고 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이 듣기 싫은 소리란 자신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데 그것을 상대방이 자신의 폐부에 찌르는 소리로 전했기 때문입니다. 탐욕과 쾌락에 물든 헤롯은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 예언자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모릅니다. 그에게 예언자란 자꾸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서 아프게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의인은 의인으로서의 죽음을 의도하지 않습니다. 순교자가 순교자의 영광을 생각하면 그것이 순수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헤로데는 아마도 요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심한 정신병에 걸린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그 소문을 듣고 예수가 과연 누구냐고 했을 때 헤로데는 요한이 부활한 것 같다는 말에 깜짝 놀랍니다. 그래서 미친 듯이 두려워하며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외칩니다. 그러니 요한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고, 헤롯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의인은 육신만으로 죽여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비록 그 시신이 잔치의 제물이 된다 해도 그 의로움은 살아서 악인으로 하여금 악을 알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죄도 많고 허물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죄 없는 장군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예언자 나단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임금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회개하기 이전에는 죄의 고통으로 뼛속의 진액이 말라버릴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회개와 용서로 그는 죄의 감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7월 12일 연중 15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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