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된 사람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필요하셨습니다. 마치 나무에 가지가 필요하듯이, 그래서 그 가지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듯이 나무이신 예수께서는 복음과 사랑의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제자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가르치시고,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세상에 보내시면서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특별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악령을 제어하는 권세입니다. 여기서 악령이란 하느님 나라를 방해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느님 나라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세력이 강하기에 이들을 제어하는 권세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권세는 세상에서 출세하고 물질을 벌어들이는 권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권세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을 수도 있고 많은 것을 잃고 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권세를 주시면서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고 했습니다. 먹을 것이나 자루도 가지지 말고 전대에 돈도 지니지 말하고 했습니다. 신발도 속옷도 여벌을 가지고 다니지 말하고 했습니다. 어디에 며칠 여행을 해도 매우 큰 트렁크에 꽉꽉 채워서 끌고 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예수께서 주신 권세를 받은 대가는 청렴한 생활 자세입니다. 물건을 많이 지니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참고, 겸손하고, 부지런해야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물건들이 주는 편리함을 누리지 못하고 불편한 것을 감수하는 생활에 익숙해야 합니다.
없이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이 사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속에 불평이 있다거나 못 가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가진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면 그것은 청렴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영적인 깊이에서 나오는 청빈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가난을 흉내 내는 것은 위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 맡겨주시는 권세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청빈의 대가를 귀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일 것입니다. 가끔 하느님의 종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탐욕과 이기심과 독선에 빠져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과연 악령을 제어할 수 있는 권세를 지녔을까를 의심하게 됩니다. 오히려 악령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예수께서 파견하신 제자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자기를 포기하고 뛰어넘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필연적이고 평생의 수행이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외부의 적보다 먼저 내부의 적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일이 제자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자기 내면에는 집착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희생과 봉사와 사랑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당부하신 말씀 중에는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나 너희의 말을 듣지 않는 고장이 있거든 그 곳을 떠나면서 그들을 경고하는 표시로 너희의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환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환영하지 않는 사람, 또는 박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과 싸워 이기라고 ‘파이팅!’을 외치지 않습니다. 그들을 이길 어떤 방책을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조용히 나와 발에 있는 먼지를 털라고 하십니다. 말싸움을 하거나 대결을 하면서 낭비할 것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모든 결정을 하느님께 맡기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발의 먼지를 턴다는 것은 ‘절교’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종말에는 그 먼지가 증거가 되어 하느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신자들은 제자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자를 맞아들이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단계, 나아가서는 보내심을 받는 단계까지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처음에는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그 중에서 12제자를 뽑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응답했습니다. 그리고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이렇게 성장해서 복음의 열매를 맺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이런 목표도 없고 성장이 없다면, 주어진 사명이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 신앙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며 무의미하게 썩고 맙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은 아집이 되고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처럼 되어버리고 맙니다. 모든 신자들은 제자로서 세상에 파견된 사람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7월 5일 연중 14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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