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

겨자씨의 기적

by 분당교회 2015. 6. 15.

겨자씨의 기적

“엄청난 아픔이나 비극도 꼭 그만한 크기의 기쁨에 의해서만 극복되는 건 아니거든요. 작은 기쁨에 의해서도 충분히 견뎌져요. 사람의 정서라는 게 참 묘해서, 그렇게 살게 되어 있는 거지요.” 얼마 전 어느 신문에 실린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선생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또한 세상의 변화라는 것도 작은 숲(공동체)을 많이 만들어서 서로 위로도 하고, 작은 약속도 하고, 그 ‘인간적인 과정’ 자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슬픔을 극복하는 것도, 불의한 세상이 바뀌어지는 것도 작은 것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당시에는 ‘변방’에 있던 비주류였습니다. 당시의 주류는 로마의 황제이고, 또 유다 사회에서는 예루살렘 중심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변방의 갈릴래아에서 죄인들, 병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예수께서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바꿀 희망의 씨앗을 뿌린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작은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씨앗인 겨자씨 한 알이 땅에 심어져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고 했습니다. 또,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 나중에 큰일에도 충성할 수 있음도 강조했습니다. 또한 ‘그렇습니다.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는 등 여러 곳에서 작은 사람, 약자들, 어린이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하늘나라를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늘나라는 이렇게 작은 사람,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크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이미 세상에서 받을 것을 다 받았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걸 이유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작은 사람들이 갖는 신앙과 소망 그리고 사랑이 세상을 새롭게 열어가며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하늘나라의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겨자씨’ 같은 작은 씨앗을 땅에 심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먼지처럼 작은 씨앗을 땅에 심는 사람의 소망 역시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비록 아주 작은 씨앗이라 존재자체도 미미하지만 나중에는 이 씨앗으로 말미암아 큰 숲을 이룬다는 소망이 없다면 그리고 그 확신이 없다면 씨앗을 심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일을 생각할 때 우리는 자주 큰 결실만을 생각하다가 작은 씨앗을 심는 성실함을 망각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받고 미움 받던 초대교회 교인들과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던 마음은 아마도 겨자씨처럼 연약하고 작은 씨앗을 척박한 땅에 심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불굴의 희망과 믿음이 있었기에 창대한 복음의 세상을 열 수 있었습니다.

장 지오노라는 작가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의 내용은 위대한 작은 사람의 희망의 혁명이라 부를 만큼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폐허처럼 보이는 마을에 나타납니다. 마을만 폐허가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도 피폐해져서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증오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다가 한 양치기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밤에 이 양치기 노인은 너도밤나무 열매를 물에 담구고 다음 날 심을 준비를 합니다. 그는 매일 나무를 심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묵묵히 너도밤나무를 심는 노인을 보며 나그네는 나무를 심은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노인은 3년이 다 되어간다고 합니다. 젊은이는 이런 황무지에 혼자서 나무를 심는 노인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 마을을 떠납니다. 그 후 전쟁의 소용돌이가 지나고 10년이 지난 후 젊은이는 다시 그 황무지 마을을 찾았는데 그 마을은 더 이상 황무지가 아니었습니다.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하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살기 좋은 마을이 되었던 것입니다. 숲이 생기고 개울이 흐르고 땅이 윤택해진 것입니다. 사람들의 피폐하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예전에 떠났던 사람들, 휴식을 취하러 숲에 온 사람들이 정착한 것입니다. 노인은 나무를 통해 생명과 희망을 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소망과 믿음 그리고 우직한 실천은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하늘나라는 어느 날 갑자기 큰 성인이 나타나서 세상을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키워지는 겨자씨만한 믿음과 희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주 암담한 비극과 좌절 앞에서도 손을 잡아주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한 마디가 큰 슬픔을 이겨내는 힘을 주기도 합니다. 암흑천지 속에서도 희망을 주는 것은 작은 불꽃 하나면 충분하니까요.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6월 14일 연중 11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말씀/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빠져나간 기적의 힘  (0) 2015.06.29
불안 속에 평안하기  (0) 2015.06.22
영적인 가족관계  (0) 2015.06.09
아주 특별한 배웅  (2) 2015.06.01
성령이여 오소서!  (0) 2015.05.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