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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아주 특별한 배웅

by 분당교회 2015. 6. 1.

아주 특별한 배웅

우리는 지난 한 주간을 애석한 이별의 시간으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여 간신히 연명하던 지금식 안드레 교우가 월요일 저녁에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더니 끝내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께 의탁하는 기도를 올리고 참석자들은 각자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이는 ‘이제 이 한 많은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쉬라고...’ 어떤 이는 묵언으로... 어떤 이는 못내 아쉬운 눈물로... 그러다가 함께 보육시설에서 자랐던 친구가 말합니다. ‘다음 세계에서는 좋은 부모 만나서 행복하라고...’ 아마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뼈아팠고 평생을 힘들게 만든 원인이 그 한마디에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공회 기도서 장례식 기도문에는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이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다만 새 생명으로 변화될 뿐이며 이 세상의 나그네 집을 떠난 후에는 하늘의 영원한 거처로 옮아가게 하시나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안드레 씨의 경우 이 구절이 참으로 감사하게 여겨지는 대목입니다. 만일 그의 몸이 그대로 부활하게 된다면 다시 또 그가 몸 때문에 겪어야 했던 불편함과 고통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몸을 씻고 수의로 갈아입히는 순간 비로소 똑바로 누울 수 있었습니다. 평생을 비스듬히 누워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 했고 또 따듯하게 배웅을 했습니다. 정승 집의 개가 죽으면 조문행렬이 줄을 잇고 정승이 죽으면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다고 하는 속설에 맞지 않습니다. 그를 마지막 길을 조문하는 것은 다시 무엇인가를 되돌려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지막 길을 위해서 식당 문을 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교수는 휴강을 하고, 어떤 사람은 멀리 중국에서까지 건너왔습니다. 모두 진심으로 그의 영생을 기원하기 때문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매우 특별한 배웅이었습니다.

안드레 교우는 행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마음속에서 좋은 인연으로 받아들이고 친구로,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이 참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젊은 시절부터 교회에 자기의 인생을 의탁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행복했던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심성이 순진하고 선했다고 하는 점입니다. 그에 대한 에피소드는 다양했는데, 그 중에 여러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먹을 것을 사주고 야구장에 함께 갔던 기억들을 떠 올렸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선물을 고르느라고 여러 시장들을 다녀왔을 정도로 그는 정성과 마음을 담아 선물을 주었습니다. 비록 자기는 가족이 없고 자식이 없어 그 ‘위대한’ 성남 지 씨의 대가 본인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주변의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데 아낌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세상을 긍정하고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비록 세상은 그의 인생 초장부터 ‘버림’이라는 쓰디쓴 상처를 안겼지만 그는 사람들을 사랑했고 베풀 줄 알았습니다. 같은 보육원에서 자랐던 친구의 말로는 시설에 있던 친구들 중에 더러는 세상을 원망하고 때로는 저주 하면서 어둠의 세계로 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오히려 자신을 보살펴주고 기술을 가르쳐준 보육원에 감사한 사람들은 어려운 세상을 제법 잘 적응하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역시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명암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안드레 교우에게 장애인이라고 차별하고 없인 여김을 안겼지만 그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자존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름 가지고 있었던 삶의 원칙은 첫째, ‘내 인생은 나의 것’이었습니다. 절대로 남이 자기의 삶과 일에 간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절대로 모르는 사람이 자기를 동정하거나 불쌍히 보고서 무엇을 주는 것을 받지 않았습니다. 항상 받으면 되갚을 줄 알았습니다.

그가 우리 분당교회에 와서 교우들의 따듯한 마음을 받을 때는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했다고 합니다. 명절에 음식이 넘쳐난다느니, 김장철에는 김치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는 등 천진난만하게 자랑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가 신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슨 큰 업적을 남기거나 직함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지면으로 ‘아주 특별한 배웅’을 하는 것은 그가 남긴 잔잔한 감동 때문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5월 31일 성령강림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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