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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빠져나간 기적의 힘

by 분당교회 2015. 6. 29.

빠져나간 기적의 힘

예수님에게서 기적의 힘을 마음대로 빼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누구에게나 이런 달콤한 유혹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예수님의 기적의 힘을 우리의 의도대로 빼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심지어 매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에 이것이 가능하다면 누가 일을 할 것이며, 누가 병원엘 가겠습니까? 그 기적의 힘으로 또 모두가 죽지 않고 건강하게 천년만년 살게 되는 세상이 과연 옳은 세상일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회당장의 딸이 다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집으로 가는 중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께서는 기적의 힘이 빠져나간 것을 느꼈습니다. 열 두 해 동안이나 하혈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의 옷에 손을 댄 것입니다. 그 여인은 오랜 세월 병을 치료하느라 가산마저 탕진했고 아무 효험을 보지 못했던 여인입니다. 그 여인은 예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자신의 병이 나으리라고 믿었습니다. 손을 대자마자 그 여자는 과연 출혈이 그치고 병이 나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와 그 여인만이 알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매우 다급한 발걸음을 멈추시고 누가 손을 대었는가를 찾아냅니다. 그 여자는 두려워 떨면서 예수께 이실직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여인에게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기적의 힘을 빼낸 이 여인의 믿음은 도대체 어떤 믿음일까요?

과연 우리도 이 여인의 믿음대로 한다면 기적의 힘을 빼낼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인간의 욕망과 필요에 의해서 기적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것은 사탄의 유혹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고행을 하실 때 사탄이 나타나서 인간이 가장 얻고 싶어 하는 세 가지를 만들어 보라고, 다 해 낼 수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것을 거절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밝혔습니다. 어쩌면 이 사탄의 유혹을 거절함으로서 이루는 하느님의 나라야말로 진정한 기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나 유다인들이 기적을 요구했지만 이들 앞에서는 아무런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이들도 어쩌면 예수께서 기적을 베풀었다면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기적을 일으킬 마음도 없으셨거니와 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적이 있으니까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믿음의 사건입니다.

기적은 또한 하느님 나라의 사건입니다. 기적은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받고자 하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억지로 빼앗아내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만일 받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빼낸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선물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자녀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사 주는 부모님의 선물에는 부모님의 자비로운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에 선물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기적은 전적인 하느님의 자비로움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혈증을 앓던 여인에게 예수님의 자비가 베풀어졌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의도하지 않은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그 여인의 믿음이 그를 살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여인을 병자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어디가 아프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부끄럽고 매우 은밀한 병이기 때문에 더욱 외롭고 고단한 투병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여인의 달거리라든지 하혈증 같은 상황은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다닐 수도 없었고 다른 사람과 접촉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부정이 전염병처럼 옮겨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병자이고 부정하기에 죄인 취급 받을 수밖에 없지만 이 여인에게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께 모든 것을 의탁한 것입니다. 절대자에게 인생의 모든 것을 맡기는 실존적인 위임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러던 가운데 다 죽어가던 회당장의 딸이 급기야는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포기했고 비탄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걱정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역시 믿음으로 이루어진 믿음의 사건입니다.

절망적이고 비통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걸고 믿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일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6월 28일 연중 13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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