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드리는 사람의 복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0월 13일 연중 28주일 설교 말씀)
한 가난한 소년이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멀리 강 건너편에 있는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집을 보았습니다. 소년은 늘 생각했습니다. “아, 저 황금빛 번쩍이는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저 집에 가고 싶구나...” 그러다가 하루는 큰 결심을 하고 그 ‘황금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소년이 그 집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실망했습니다. 그 집과 유리창은 황금이 아니었습니다. 창이 많은 그 집은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날 뿐이었습니다. 소년이 ‘허무한 확인’을 하고 돌아서서 멀리 있는 자신의 집을 보았을 때 자신의 집이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햇빛이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비추어 주듯이 하느님의 축복의 빛 역시 모든 사람에게 비추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무덤덤하게 건성으로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자신에게는 왜 이리도 궁색하고 야박한가 하고 불평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뿐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깨닫고,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감사드릴 줄 아는 사람만이 풍요로운 사람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끝까지 궁핍한 걸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나병 환자 열 사람이 멀리 있는 예수님에게 “예수 선생니임~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크게 소리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들 몸을 보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병자인지 아닌지를 사제들이 보고 판단하는 시대였습니다. 병자들은 죄가 그 몸 안에 들어갔기 때문에 병에 걸린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병이 다 나았다고 판정을 받는 것은 죄가 사라졌다고 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병에 걸려 고통 받는 것도 괴로운 일인데 죄인 취급 받으면서 격리되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천형(天刑)이라고 여겨지는 문둥병이라는 저주받은 병, 불치의 병에 시달리던 그들의 삶은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병 때문에 아프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저주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 때문에 그 좌절감과 상실감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병환자들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죽음보다도 더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병자들이 깨끗하게 낫는 사건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기적이며 그 기쁨은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병 환자를 치유해주시는 예수님 (10세기, 채색 삽화, 국립 도서관, 트리에, 이탈리아)
그런데 병이 나은 사람들 중 9명은 세상 속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만 발걸음을 되돌려서 예수님 앞으로 왔습니다. 그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되돌아와서 감사드린 이 사람은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떠나버린 9명은 죽었단 말일까요? 그렇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살았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죽은 사람들입니다.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심장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사막처럼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와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삶의 감동도 없고 가슴이 뻐근해지도록 느껴지는 보람도 없습니다. 코르크 마개로 꽉 막힌 빈 병을 아무리 깊은 바다 속으로 던져진다 해도 그 병에는 물 한 방울 들어가지 않습니다. 마음의 문이 꽉 막힌 사람들, 삶에 아무런 기적도 느낄 줄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아무리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도 그 사랑에 감격할 줄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우리의 영혼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자동인형처럼 무덤덤하게 살고 있는가를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운 상황이 와도 희망과 긍정의 마음을 잃지 않습니다. 이것이 감사드리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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