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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소식

성공회는 고딕이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1. 5.
 
글로스터 대성당의 고딕 회랑 (Gloucester Cathedral)


질서와 비례를 중시하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사람들은 우뚝 솟구쳐서는 온갖 장식과 넝쿨로 과하게 장식되어 무질서해보이던 이 외래 양식을 무식한 고트(Goth)의 것이라고 천시했습니다. 12-13세기 북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고딕양식의 역사는 사실 자연과 그리스도교의 만남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딕은 대자연을 닮으려고 하는 양식적 특징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인구의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당시 유럽의 상황에서 자연은 그 자체로 신보다 더 우월한 존재였겠다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의 농민들 마음 깊은 곳엔 이미 고대로 부터 땅에 뿌리를 둔 지모신을 섬기는 민간싱앙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시작된 대규모 개간으로 인한 자연(숲)의 소멸과 함께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면서 여전히 지모 숭배의 마음을 가졌던 농민들을 그리스도교가 끌어안기위해서 교회는 성모신앙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킵니다. 당시의 프랑스와 영국, 곳곳에서 도시에 자리잡은 고딕 대성당의 이름들이 노트르담(Notre-Dame)이나 아워레이디(Our Lady), 성모 예배당으로 건립되었다는 것은 보편적인 차원에서 성모 마리아를 지모신인 대지의 어머니, 자연신과 동일시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샤르트르 대성당의 바닥을 파내려가다보면 켈트인들이 신앙했던 성소와 일치한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순환되고 부활하면서 생산을 재개하는 대자연과 자연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했고 그리스도교의 여러 상징들과 조우하면서 고딕 성당안에 녹아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활발하게 번성하던 고딕양식은 15-17세기의 프랑스 고전주의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를 거치면서 위축됩니다. 애매함보다는 명쾌함을, 복잡함 보다는 단순함을, 일탈보다는 질서를, 과도한 이상보다는 현실의 조화를 존중하던 피렌체의 예술가들에 의해서 비판받습니다.

그 후 고딕의 신화가 부활하기 시작했고 재평가가 가장 먼저 활발하게 시작된 곳이 영국이라고 합니다. 그 배경에는 프랑스에서 건너온 정복왕 윌리엄과 루이 14세와 결탁해 의회를 무시하고 절대왕정을 실현하려던 제임스 2세에 대한 반발과 함께 일어난 명예혁명과 그 이후의 제한된 왕정, 의회제 민주주의의 근거로서, 숲에 살면서 부족간 합의제를 가졌던 색슨인들의 정치형태를 이상화한 고딕신화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명예혁명의 성취를 색슨인의 왕국, 다시 게르마니아의 숲으로, 더 나아가 고트족의 숲까지 거슬러 올라가 되찾고자 하는 복고적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정치적 자유주의, 중앙의 획일적 통제를 벗어난 지방의 자유를 상징하는 컨트리 하우스와 자연주의 정원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베르사이유 궁전과 대비되는 울창하면서 고대의 폐허가 자연스럽게 노출된 영국풍의 정원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의 본질은 이성이었고 균형과 조화, 좌우대칭이 가지는 불변성과 보편성을 펼치는 고전주의 자연관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자연의 본질이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하는 가변성과 장소에 의해 달라진다는 특수성을 가진 고딕신화로 대치됩니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모습을 보면 오랜 건립기간을 따라 한쪽 탑은 로마네스크 말기양식(고딕 초기양식), 다른 왼쪽 탑은 고딕말기양식으로 만들어져 새로운 탑을 옛 탑에 맞추려 하지 않았지만 둘 다 고딕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을 긍정하고 각 시대가 지닌 표정을 그대로 새겨내려고 하는 것이죠.

단순히 고딕신화를 건축에만 한정시킬수 없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는 프랑스 고전주의의 보편 신앙에 대항한 영국의 사상적 흐름을 주목하면서 세익스피어를 재평가합니다. 고전주의에서 일탈해 풍토의 다양한 요소를 하나의 훌륭한 전체로 정리했다고 하고 사건을 본 그대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창의성을 가지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전체를 창조해냈다고 말합니다. 마치 게르마니아 숲을 거닐듯 세익스피어의 작품이 경이, 환상, 미지와 조우하게 되는 기대와 두려움, 떨림, 유머가 고딕적 풍모를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고딕이라는 단어가 지시하는 애매함 혼란, 부자연, 뒤섞임, 짜깁기, 지나친 장식 등으로 비난 받던 시기가 있었지만 모든 존재가 자기의 타자와 인접해 있고 그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 항상 다른 종류의 것들에게 자기 몸을 열어 주는 열린 태도가 고딕의 정수라고 볼 때, 성공회적 믿음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의례히 한국 성공회내의 많은 분들이 성공회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동대성당을 쉽게 떠올리는 모습을 봅니다. 그 영향때문인지는 몰라도 몇몇 개교회의 교회 신축사업 때에 대성당을 흉내내고 장식을 그대로 조악하게 옮기는 경우를 목격합니다. 게다가 그것이 성공회적이라고 무심하게 말합니다. 성공회가 고딕양식을 받아들이라는 의도가 아닙니다. 다른 것에 대한 열린 태도로서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넘어 새로움을 바라보는 성공회적 태도를 떠올려 본 것입니다.

거친 제목으로 시작하는 제 글은 일본의 권위있는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한 사카이 다케시 교수의 책<고딕, 불멸의 아름다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조충연 프란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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