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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9년 11월 29일 대림 1주일(다해) 강론초 (루가 21:25-36)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9.


2009년 11월 29일 대림 1주일(다해) 성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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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 33:14-16

14. 나 야훼가 선언한다. 장차 내가 약속한 복을 이스라엘 국민과 유다 국민에게 그대로 내릴 날이 온다. 15. 내가 다윗의 정통 왕손을 일으켜줄 그 날, 그 때가 온다. 그는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펼 것이다. 16. 그 날 유다는 살 길이 열려 예루살렘에서는 모두들 마음 놓고 살게 되리라. 그 때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가리켜 '야훼 우리를 되살려주셨음.'이라고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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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데살 3:9-13

9. 우리는 여러분의 일로 해서 우리 하느님 앞에서 큰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 모든 기쁨을 생각하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0. 우리는 여러분을 다시 만나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것을 채워줄 수 있게 되기를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11.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우리의 길을 잘 열어, 우리가 여러분에게 갈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12. 그리고 주님께서 여러분의 사랑을 키워주시고 풍성하게 해주셔서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듯이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고 또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를 빕니다. 13. 그리하여 여러분의 마음이 굳건해져서, 우리 주 예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다시 오시는 날, 우리 아버지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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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 21:25-36

25. "그 때가 되면 해와 달과 별에 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지상에서는 사납게 날뛰는 바다 물결에 놀라 모든 민족이 불안에 떨 것이며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무서운 일을 내다보며 공포에 떨다가 기절하고 말 것이다.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러나 그 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라. 너희가 구원받을 때가 가까이 온 것이다."
29.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를 들려주셨다. "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들을 보아라. 30. 나무에 잎이 돋으면 그것을 보아 여름이 벌써 다가온 것을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아라. 32.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4.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 날이 갑자기 닥쳐올지도 모른다. 조심하여라. 35. 그 날이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덫처럼 들이닥칠 것이다. 36.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닥쳐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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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성공회기도서

영원하신 하느님, 밤이 깊을 수록 새 아침이 더 가까워지나이다. 비옵나니, 우리가 항상 깨어 주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때에 모든 성인들과 더불어 경배하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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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기와 인생의 목적 (루가 21:25-36)

이제 교회력으로 대림절기를 맞으며 새해를 시작합니다.
“새롭다”는 것은 참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 실은 옛것에 대한 집착을 아프게 놓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 새로움은 산고의 진통을 겪고 나서야 새생명을 얻게 되는 것과 같고, 매일 우리가 포근한 잠자리를 포기해야 아침의 새로움을 맛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이 오시길 기다린다는 것은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기분이 아니라, 오늘 복음서가 표현하는 대로 세상의 종말(終末)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정보나 설명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치를 보여주고 결단을 요구합니다.
천국에 대한 세세한 정보나 설명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천국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종말이나 구원이나 천국이나 모두 무슨 천기누설의 정보가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장 큰 가치로 알고 살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 인생의, 우리 역사의 절대적 가치임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차원을 달리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삶과 연결된 죽음도 차원을 달리해서 받아들이게 합니다.

어떤 이들은 점쟁이나 무당이 지나간 일을 알아맞히고 앞 일을 일러주는 것을 놀라고 신기해하며 의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을 알아맞히는 신통력이 정말 대단한 것일까요? 우리 행복이 정말로 그런 정보에 달려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과거는 남이 알아맞히는 정보에 머물 수 없습니다.
우리의 과거는 용납되고 치유되어야 하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남이 점쳐주는 대로 걷게되는 운명적인 선로가 아닙니다. 내가 자유와 기쁨으로 선택하고 결단하며 열어가야 할 새 길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그 길을 하느님께서 보장하시고, 그 여정을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말은 단순한 파국이 아니라 사실은 세상의 완성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 갑자기 죽음으로 끝장나는 그런 것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수십년 보장된 시간 덩어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오늘 하루요 순간순간의 연속일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 붙잡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도 실은 한계가 있고 소멸해가는 것들입니다. 그 무엇도 우리의 생명과 건강과 행복을 영원히 보장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삶의 행복, 인생의 목적은 무엇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 자신이 자유로운 인간, 사랑하는 인간, 나눔과 섬김을 아는 인간, 하느님을 아는 인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께 돌아가는 인간이 되는 데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신의 도움으로 이 세상에서 무병장수, 소원성취, 만사형통, 성공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이 우리 인생과 역사의 궁극적 가치임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창조, 종말, 구원, 천국 모든 언어는 이 고백을 표현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 삶의 차원을 하느님의 나라의 수준으로 높여줍니다. 삶과 연결된 죽음도 차원을 달리해서 받아들이게 합니다.

우리의 자아가 현재 느끼는 만족감이 행복의 기준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어가는가”입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 자신의 인생을 추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경험과 인품이 우리 삶의 결실로, 인생의 열매로 남아야 합니다.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걱정이” 우리를 사람답게,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 기도하며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인간이 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 심령 안에 강림하시는 주님을 모실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우리에게 무엇을 빼앗아가는 것처럼 여기며 집착하고 슬퍼해서는 안됩니다. 
도리어 시간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기회들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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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개’하는 대림절

오늘 대림1주일의 복음서는 심각한 종말의 경고를 우리에게 먼저 전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을 천체에 징조가 나타나고 우주에 파국이 닥치는 두려운 심판의 날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들을 오해하지 말고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때는 종말의 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의 연대표 어느 시점에 지구상에 벌어지는 어떤 일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시고자 함이 아닙니다.
나무에 잎이 돋으면 여름이 다가온 것을 알게 되지 않느냐고 비유를 들려주신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의미있는 시간을 ‘시간’이 아니라 ‘때’라는 차원에서 알려주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다시 오시는 종말의 때는 객관적 정보로 파악할 수 있는 어떤 시점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서게 될 ‘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 위에 마냥 실려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피할 수 없는 ‘때’를 지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언제 주님 앞에서 서게 됩니까? ‘정보’ 차원으로는 말할 수 없고 ‘믿음’의 차원으로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죽음’의 때에 주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살아서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을 대면하여 나아갈 때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순간은 바로 죽음과 심판의 때를 앞당겨 체험하는 것입니다.

2003년 11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이 순간들은 우리에게 어떤 ‘때’입니까? 우리가 우리의 주님을 기다리는 ‘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아기 예수로 잉태되어 계시는 때입니다.

아기를 가진 여인이 때가 차면 해산의 고통과 기쁨을 피할 수 없듯이, 때를 따라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성탄의 때를 맞게 되고 주님의 수난과 부활에 동참하게 됩니다.
성탄을 맞으며 우리는 단지 12월 25일에 이천년 전 아기 예수의 탄생 사실을 기뻐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영혼 안에 그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으로 임재하고 계신가를 물어야 합니다.
성탄잔치 준비에 분주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는 이렇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가난하고 순결한 처녀 마리아의 태중에 성령으로 오신 것처럼,
이제 제 마음에 성령으로 오시옵소서.
제 가난한 마음을 깨끗이 비워 주님을 맞이하려 하오니
저를 축복하시고 저를 통해 이 세상에 강림하시옵소서.” (2003.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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