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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2009년 5월 24일 (부활 7주일) 강론초 (요한 17:6-19 주님의 간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5. 22.


2009년 5월 24일 부활 7주일(승천 후 주일) 성서말씀 

사도 1:15-17, 21-26
15 그 무렵 어느 날 교우가 백이십 명 가량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 베드로가 일어나 이렇게 말하였다.
16 "교우 여러분, 예수를 잡은 자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하여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빌려 예언하신 말씀은 정녕 이루어져야만 했습니다. 17 그는 본래 우리 열두 사람 중 하나로서 우리와 함께 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21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오시는 동안,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예수께서 우리 곁을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줄곧 우리와 같이 있던 사람 중에서 22 하나를 뽑아 우리와 더불어 주 예수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23 그들은 바르사빠라고도 하고 유스도라고도 하는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천거한 다음 24 이렇게 기도하였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 주님께서 이 두 사람 중 누구를 뽑으셨는지 알려주십시오. 25 유다는 사도직을 버리고 제 갈 곳으로 갔습니다. 그 직분을 누구에게 맡기시렵니까?"
26 그리고 나서 제비를 뽑았더니 마티아가 뽑혀서 열한 사도와 같이 사도직을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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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한 5:9-13
9 우리가 사람의 증언을 인정한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더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하느님께서 친히 당신의 아들에 관해서 하신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10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기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듭니다. 그런 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에 관해서 증언하신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과 그 생명이 당신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12 하느님의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고 그 아들을 모시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13 나는 하느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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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7: 6-19
6 "나는 아버지께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뽑아 내게 맡겨주신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분명히 알려주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이었지만 내게 맡겨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과연 아버지의 말씀을 잘 지키었습니다. 7 지금 이 사람들은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8 나는 나에게 주신 말씀을 이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였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참으로 깨달았으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었습니다.
9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세상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이 사람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입니다. 10 나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며 아버지의 것은 다 나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로 말미암아 내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11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지만 이 사람들은 세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12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이 사람들을 지켰습니다. 그 동안에 오직 멸망할 운명에 놓인 자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를 잃은 것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3 지금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아직 세상에 있으면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 사람들이 내 기쁨을 마음껏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 주었는데 세상은 이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내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지켜주시는 일입니다. 16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17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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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성공회기도서
전능하신 하느님, 복되신 성자 예수께서는 하늘 높이 승천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나이다. 비옵나니,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굳세게 하시어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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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되어 진리를 따라 (요한 17: 6-19)

고(故)노무현 전대통령의 자결(自決) 소식으로 제 정신이 멍합니다. 무슨 말을 꼭 해야 할 것도 같고 동시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느낌입니다.


그동안 저는 교회공동체 안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말하는 걸 의도적으로 조심스럽게 피해왔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그리 많지 않은 우리 교우들 가운데도 정치적인 견해는 다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입장은 열심히 대화한다고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상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자기의 경험과 이해관계와 생각의 틀을 통해 이미 결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을 기꺼이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이의 견해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일은 위대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게다가 저는 그렇게 이끌만한 카리스마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 관심은 약간 우회적입니다. 직접적인 언급이 아니라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신앙적 가치, 복음의 가르침을 깊이 찾고 나누는 것이 지혜롭다고 봅니다. 신앙적인 고민이 참되고 깊으면 우리의 세상살이가 참되고 진지할 것이고 그러면 세상살이의 일부인 정치적인 문제도 자연스럽게 참된 분별력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얼핏 순진한 태도 같습니다. 하지만 신앙적인 이야기는 단순히 우리의 머리가 아니라 살아계신 성령께서 이끌어주셔서 가능한 일이기에 우리는 겸허히 확신을 가지고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서로 신앙적인 이야기를  진지하고 진실되고 지혜롭게 나눌 수 있어야 하고 그 이야기를 통해 늘 우리 마음을 열고 생각을 가다듬고 삶을 변화시키며 인격의 열매를 맺어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혼란스런 현실에 대해 복음이 전하는 가장 깊은 차원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이 전하는 겟세마니 기도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우리들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간구하시는 내용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지켜주시는 일입니다.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주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하나가 되는 일은 그저 막연한 소속감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입장이 달라도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장벽과 차별과 불통(不通)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가 되는 일은 강제적인 통합이 아니라 더 큰 가치를 향한 소통(疏通)입니다. 그것은 사랑이요 친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악마의 논리와 지배를 따라 살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살지만 하느님의 말씀, 곧 진리를 위해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과 성사는 그것을 분명히 새롭게 확인시켜줍니다.(2009.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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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천(昇天)- 예수님이 돌아가신 하늘
(요한 17: 6-19)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지만 이 사람들은 세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삽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이 세상’에 오셨다고 증언합니다.  이 ‘하늘’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흔히 우리는 이 하늘을 우주공간 어딘가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니라구요? 그렇게 단순하고 유치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하늘은 하느님이 계신 곳을 상징하는 이름, 곧 우리의 세상과는 차원과 수준을 달리하는 영적인 세계를 하늘(Heaven)이라 부르는 것이지, 저 하늘공간(Sky)을 말하는 게 아니라구요?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정확한 이해라고 동의합니다.

그래도 조금 더 의심해보면 혹시 우리가 생각하는  영적인 세계로서의 ‘하늘’은 이른바 ‘제 세상’, ‘영계(靈界)’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요? 살아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하지만 우리 모두 예외없이 죽음을 통해서 가지 않으면 안되는 ‘저 세상’ 말이지요. 우리는 하느님이 바로 저 세상에 계시다고 은연중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생각도 틀린 것이라구요?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세상과 저세상을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는 이원론이 아니며, 하느님은 ‘저 세상’에 속하여 계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저 세상을 모두 넘어서서 계신다는 말씀이지요.
좋습니다. 약간 어렵긴 하지만, 그러니까 ‘저 세상’은 ‘이 세상’의 상대개념일 뿐이고, 우리가 관심하는  ‘하늘’의 존재란 이 세상, 저 세상을 망라한 인간들의 상대적이고 유한한 삶에 대하여 절대적인 한 분 하느님의 무한한 뜻과 사랑이 작용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강림(사람되심)은 우주공간에서 지구공간으로 외계인처럼 내려오셨다는 뜻이 아니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유령처럼 나타나셨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승천(하느님되심)도 지구공간에서 우주공간 어딘가로 올라가셨다는 뜻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저 세상의  영계(靈界)로 가셨다는 뜻도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승천(昇天)‘은 사람되어 참사람으로 사셨던 예수님이 그 참혹하고 어이없는 십자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다시 일으켜지셔서, 성자 하느님으로 다시금 높여지신 일입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가 지금  “말씀의 진리로 우리를 세상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그 거룩함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 안에 서로 하나가 되고 있는가” 를 돌아보게 합니다. (2006.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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