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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설교] 일흔 두제자의 파견과 보고 _ 루가 10:1~11, 16~20

by 푸드라이터 2007. 7. 7.
선교 - 안에서 밖으로 전해지는 하느님 나라(루가 10:1-11,16-20)

7월 8일(연중 14주일)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따로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하신 이야기입니다. 열 두 제자를 파견하신 이야기와 내용이 거의 동일하지만 아마도 루가는 파견 받는 제자들이 늘어나고 선교가 확대되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21세기 아시아 동쪽 끝의 우리 독자들도 파견 받는 제자로서의 소명이 먼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에서 말이지요.

문제는 우리가 주님의 ‘파견’을 정말로 기뻐하고 순종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소명)이 우리의 실존 안에 깊은 울림으로, 진정한 기쁨으로, 참다운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지난 주일 복음은 “나를 따라 오너라” 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우리의 참된 동기와 태도를 반성하도록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이셨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는 이 세상의 안락과 평안을 위하거나, 죽은 후의 복락을 보장받기 위해서 일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태도가 세상에서 적절한 인간관계를 맺고 필요한 인맥관리를 하는 그런 차원일 수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따라 가는 길은 곧 예수님께서 드러내시는 새로운 비전인 ‘하느님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과 세상의 경영에 ‘하느님의 은총과 진리’, ‘하느님의 현존’이라는 새로운 차원(次元)을 더하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은 개인주의적인 태도로 내가 원하는 것을 신령한 도움으로 얻어내자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일하는 교회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산 자로 깨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은 외적이기 전에 우선 내면적인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우리의 삶에 하느님의 현존(함께 하심)을 청하고, 깨닫고, 감사하며, 누리는 일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그 생동하는 관계가 곧 신앙생활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실이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느님, 자비로우신 하느님, 사랑이신 예수님, 지혜이신 성령님의 현존으로 깊은 영향을 받는다면 우리는 ‘복음’을 살고 있다, ‘하늘나라’에 살고 있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복음의 촛점은 ‘나의 소원성취’가 아니라 ‘주님 뜻이 이루어짐’입니다.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교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곧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먼저 살고 전하는 일입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일, 병자를 고쳐주는 일, 자기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직장과 가정에서 묵묵히 본분을 다하는 일도 훌륭한 선교입니다. ‘하느님나라’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우리의 삶을 규율하는 절대적 원리요 가치임을 기억한다면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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