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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성탄대축일]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by 분당교회 2015. 12. 25.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루가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의 경위를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하고 성탄의 소식을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동방 박사들이 별을 따라와서 아기 예수 탄생을 경배한 것과, 요한복음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신학적 해석으로 설명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아예 예수 탄생의 사건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루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신학적 입장이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루가는 약자들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정의와 평화를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상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예수 탄생 당시 목자들은 때때로 남의 풀밭에 짐승을 몰고 가서 풀을 뜯게 하거나 자기 주인 몰래 양과 염소의 젖을 내다 팔거나 또는 양털을 팔아먹었기 때문에 직업상 죄인 취급 받기 십상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직업상 귀천이 명백하게 구분되었던 사회에서 이 못난 사람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온 이스라엘이 학수고대하던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음을 알리고 이들이 제일 먼저 가서 경배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마태오가 예수께서 다윗왕의 혈통을 이어받았음을 족보로 설명한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마구간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고 말구유에 누워있었다고 하는 것도 낮은 곳에 임하시는 하느님, 약자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우리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하늘에서 천사들의 합창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이 찬양의 소리야말로 성탄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고, 온 인류가 성탄을 기뻐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돌아오는 때가 되면 한 해 동안 얼마나 숨 가쁘게 살아왔는지를 돌이켜 보게 됩니다. 방송사마다 10대 뉴스를 선정하고, 교수들은 사자성어를 발표합니다. 그러나 한 결 같이 영광과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과학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물질적인 소비는 많아지고 있습니다만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평화롭지 못하고, 가슴은 답답합니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국민의 생활보다는 정략적인 싸움에 몰두하는 것 같고 청년들은 절벽 앞에 선 기분으로 미래를 향한 작은 구멍이라도 찾으려 청춘을 보내고 있습니다. 노동자와 농민들은 차가운 겨울 거리에 나와 생존권을 위해 외치고 있습니다. 이 평화롭지 못한 상황에 그리스도의 탄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저 잠시 성탄절 선물을 교환하고 케이크를 자르고 취하는 날 쯤으로 여겨지지 않을까요?


그리스도 탄생의 복된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달려가서 아기 예수를 봅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자기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었다고 사람들한테 전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루가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목자들의 신분이나 직업이나 경제적인 상황이 좋아졌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저 다시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아 갈 뿐이었을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중에도 숱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자들을 치유하셨지만 그런 경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목자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이었을까요?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 있다면 아마도 ‘평화’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을 만난 기쁨으로 충만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얻은 평화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이고 영혼에 기쁨으로 충만한 평화입니다. 이것은 물질과 신분의 상승으로도 얻을 수 없는 행복입니다. 마치 의사의 치료로 환자들이 병을 낫는다 해도 얻을 수 없는 기쁨과 평화입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듣고 직접 소통함으로서 얻는 평화는 어떤 힘으로도 누를 수 없는 것이고 모든 불의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영적인 힘을 우리에게 줍니다. 배고픔을 직접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며,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갑니다.


말씀 곧 진리가 세상에 빛으로 왔지만 사람들은 눈이 가리어져서 보지 못했다고 요한복음에서는 말합니다. 때문에 성탄은 2천 년 전에 아기 예수가 탄생했다는 사실만을 축하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 떠지는 것을 기원하고 또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상통하고 있다는 것을 축하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에 영광을 돌리지 않는 사람들은 눈이 떠 질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 없이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한 세상은 평화로울 수가 없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2월 25일 성탄대축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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