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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소년 예수

by 분당교회 2015. 12. 26.

소년 예수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은 너무나 애달파서 장이 토막이 날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를 잃은 아이의 심정은 어떨까요? 아마도 갑자기 극도의 불안과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일 것 같습니다.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 기간에는 무수히 많은 인파가 예루살렘에 모였을 것입니다. 예수가 12살 때 가족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부모는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의 부모는 하룻길을 가고 나서야 예수가 보이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 가족들과 친척들이 함께 움직이고 마치 난민들이 피난을 가듯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길을 간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하루가 지난 뒤에야 아이가 없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은 조금 너무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성령으로 잉태하고, 주의 천사가 나타나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 예고하고, 동방박사들이 방문하기도 한 그들이었지만 역시 예수의 부모라 해도 완벽한 인간, 완전한 부모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옆 사람과 정신없이 이야기하며 으레 아들이 잘 따라오겠거니 무심코 제 갈 길을 간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삽니다. 아이가 부모 손을 잡고 갈 때 아이가 한 눈을 팔수도 있고 힘이 떨어져서 손을 놓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손을 하느님께 맡겨드리고 하느님이 우리를 이끌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하느님의 손을 잡고 간다고 했을 때는 엉뚱한 이별을 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윌리엄 홀맨 헌트 作)

 

예수가 없는 것을 깨달은 이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며 줄곧 아이를 찾았습니다. 얼마나 애간장이 탔을까요?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흘 만에 성전에서 예수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매우 태연하게 학자들과 한 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질문도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애타는 마음으로 찾아다녔는데 아이는 아주 편안하고 태평스럽게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부모를 따라 나자렛으로 돌아 와 순종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공생애 이전에 예수가 성장하는 모습을 유일하게 전하는 기록입니다.


어느 위인전이든 영웅 신화이든 어릴 때부터 비범한 성격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법인데 루가가 전하는 예수의 어린 시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2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이 생전 처음 집을 떠나 먼 길을 여행한 낯선 곳에서 부모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두려움과 불안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소년 예수는 부모와 떨어져 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서워서 울었다거나 부모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천하태평이었습니다. 소년 예수는 반문합니다. 자기가 ‘아버지의 집’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식입니다. 여기서 소년 예수의 자의식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알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느님께서 계신 곳으로 인식하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자기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임을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보통 어린 아이들 경우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서 평온함과 불안함의 차이가 큽니다.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누구와 함께 있느냐, 누가 위로와 힘을 주느냐에 따라서 마음의 상태가 달라지곤 합니다. 예수는 성전에 있으면서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 같은 평안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존재 근거가 하느님이심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누구와 있는가요? 우리 자신의 자의식과 존재의 근거를 확인시켜주고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줄 그 누구를 어디서 만나고 있는가요?


한 해가 저물어가는 마지막 주일에 우리는 과연 지난 일 년 동안 어디서 누구와 있었는가를 돌이켜 봐야 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불안과 평온 사이를 여행했는가를 성찰해 봐야 합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2월 27일 성탄 1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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