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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깨어 기도하라!

by 분당교회 2015. 11. 29.

깨어 기도하라!

제주 올레길을 비를 맞으며 걸었습니다. 모처럼 먼 길을 날아왔는데 하필이면 이 때 비가 오다니... 역시 사람 일이란 자기의 계획과 바람대로만 되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걸으며 길 위에서 길을 물었습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인생과 신앙의 행로를 성찰하는 묵언의 발걸음을 통해 하늘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다를 봅니다. 바다 물결이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그리고 바위와 절벽에 파도가 부서집니다. 그러나 먼 수평선은 미동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대로입니다. 문득 태풍이 불 때나 쓰나미가 몰려올 때도 저 수평선은 변함이 있을까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 질문에 여러 사람들이 수평선은 변함이 없다고 답합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바닷물의 파장과 부서지는 파도처럼 우리는 얼마나 분주하고 번잡스럽게 사는가... 그리고 그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갈등하며 상처받고 분노하는가... 그러면서 저 먼 곳에서 변함없이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처럼 움직이지 않는 진리와 하느님의 뜻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깨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다가오는 종말 앞에서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종말의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닥쳐오니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조심한다, 깨어 기도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매몰되거나 도취되어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라는 뜻일 것입니다. 어딘가에 흠뻑 빠져있어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한 상태가 바로 잠들어 있는 것이며 자신을 잃은 상태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생활 속에 빠져들어 있기에 남의 허물과 잘못에 대해서 말합니다. 자기의 잣대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우리가 깨어있다고 하는 것은 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모든 인간이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한계이고 운명이기도 합니다만 인간은 그 한계와 운명을 초월한 하느님의 존재를 알고 있기에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허망한 존재인가도 알게 됩니다.

또한 우리를 깨어있지 못하고 도취하게 만드는 것 중에는 타인의 시선과 유행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좋다고 하면 너도나도 다 따라합니다. 명품가방이 좋다고 하면 가게 앞에서 밤을 새워서라도 사려고 합니다. 옷과 머리 모양 등등 남들처럼 하는 것이 행복한 것인 양 타인의 시류와 유행에 휩쓸립니다. 남이 보기에 어떤지, 내가 이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는지... 자기가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행복해 보이도록 살려고 합니다. 내가 생각해서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어느 방송에서, 또는 저명한 누가 옳다고 하니까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자신의 가치판단을 맡겨버립니다. 이렇게 살다보니까 정작 자신의 인생은 사라지고 남는 것이 없어집니다.

종말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에만 신경 쓸 수 있을까요?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그 종말에 대비해서 심판과 구원을 위한 다른 삶을 살 것입니다. 아예 자포자기 하고 절망한 사람들이라면 쾌락주의로 빠질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믿는다면 이전의 삶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깨어있지 않는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서 전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에만 몰두 할 수 있습니다. 쓸 데 없는 세상 걱정이란 또 무엇일까요?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걱정하면서 한 숨을 쉬는 것을 기우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걱정과 절망에 빠집니다. 또한 당장 눈앞에 있는 역경과 시련 앞에서 절망하거나 신세를 한탄하는 마음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더 멀어집니다.

깨어 기도하라고 했지만, 기도해야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란 하느님과의 대화이고, 기도를 통해서 내가 변화되어 하느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연결되고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디쯤 있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깨어있는 사람이란 기도를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고 인생의 현주소를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이 24시간 직립해서 깨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늘 도덕과 윤리를 생각하면서 옳고 그른 것만을 따지면서 살 수도 없습니다. 깨어 있다고 하는 것은 나의 생각과 마음이 하느님을 향하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1월 29일 대림1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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