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으나 깊은 마음
시인 도종환은 ‘깊은 물’이라는 시에서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라고 묻습니다. 강물엔 나룻배를 띄우고 바다엔 고깃배를 띄울 수 있습니다. 개울엔 종이배를 띄우고 큰 바다엔 여객선이나 화물선을 내보냅니다. 사람들은 물을 보고 그 물에 뜰 수 있는 배가 어떤 배인지를 압니다. 물의 처지에서 보면 그 물이 품을 수 있는 배가 따로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는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과연 우리 가슴에는 종이배 하나라도 뜰 수 있는 깊이와 여유를 지니고 있는가를 반성하게 됩니다. 마음의 깊이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혀서 시냇물커녕 메마른 돌밭이나 사막이 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 볼 문제입니다. 종이배처럼 작고 가벼운 남의 아픔이나 슬픔, 고민 같은 것을 조금도 담을 수 없는 마음은 이미 바닥이 드러난 마음입니다. 올라가는 것에만 집착해서 남의 마음을 담을 여유가 없습니다. 높아지기 위해서 바닥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세상의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바닥이 드러났으니 그만큼 상처입기도 쉽겠지요.
물이 깊다는 말은 곧 바닥이 넓고 낮다는 말입니다. 바닥이 낮을수록 그 깊이가 더해지고, 물이 깊을수록 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살 수 있습니다.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수많은 해초도 가릴 것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바다 깊은 속 심연은 고요합니다. 바다 표면에서 풍랑이 일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깊이, 인격의 깊이, 마음의 깊이도 심연과 같을 때 채워지는 은총도 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낮아질 줄 알아야 하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두고 옥신각신 싸웁니다. 같은 길을 가는 동지이자 도반인 사람들끼리 서로 높은 자리를 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함께 가는 길이 아닙니다. 새로운 지배적 지위를 얻기 위한 길이지 진리의 길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높아지는 것이라고도 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높다, 낮다.’라는 말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낮은 것이 있으니 높은 것이 있습니다. 누구든 자기의 눈높이에서 높고 낮음을 판단합니다. 과연 그 높고 낮음을 가리는 척도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인격과 사랑으로 보신 것 같습니다. 낮아져서 수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높은 사람이라는 것이겠지요. 제자들은 소유와 지배라는 척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누가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잣대로 상대방을 못난 사람 잘난 사람으로 가름합니다. 흔히 우리 사회를 승자 독식 사회라고 합니다. 일등이 모든 것을 다 차지하고 대우받는 사회이기에 유치원부터 심각한 경쟁의 정글 속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낮아지는 마음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깊은 성찰과 사고의 능력도 상실되고 오로지 높은 곳으로만 향해 가려는 마음뿐입니다. 남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깊이와 넓이가 없기에 더욱 세상은 험악해지고 끔직한 범죄와 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많은 새로운 병들이 등장합니다. 봄철에는 메르스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 질병들은 백신이 개발되고 치료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울증이라는 병은 우리 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살률 1위는 결코 우울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우울증 역시 승자독식사회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 작은 마음 하나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요? 어린이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보상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한테 무슨 보답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어린이와 같이 순수하고 작은 마음을 받아들일 때 받는 더 큰 선물은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정화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넓고 깊은 마음의 소유자를 만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바닥이 낮고 낮아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서 다른 사람들의 상처와 웃음과 눈물이 섞여 와도 다 푸근히 감싸고, 정화시키고, 새 힘을 줄 수 있는 인덕의 소유자가 바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문제들과 어려움도 바로 이 낮으나 깊은 마음이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9월 20일 연중 25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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