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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나병환자의 애원

by 분당교회 2015. 2. 17.

나병환자의 애원

예수께서 길을 가시는데 나병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애원합니다. 나병은 피부가 썩는 병이라 예수님 시대에는 그것이 불치의 병이요 하늘이 내린 형벌처럼 여겨졌습니다. 나병환자는 찢어진 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친 차림으로 마을 밖에서 살면서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치며 다녀야 했습니다. 누가 가까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들 곁에 갈 수도 없고, 오는 것마저 막아야 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서 속의 환자는 예수님 앞에 나타나서 무릎 꿇고 애원을 합니다. 그 간절함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이 겪는 외로움과 고통을 한하운이라는 시인은 ‘소록도 가는 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전라도 길(소록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소록도에서 환자들을 인간 이하의 대우를 하면서 그들에게 ‘천국 만들기’ 대공사의 짐을 지웠다고 합니다. 희귀 나무와 기암괴석을 나르게 하고 수 백 톤의 바위를 완도에서 옮겨올 때 수백 명의 한센인들이 목도를 메었다고 합니다. 이때 목도를 메면 허리가 부러져 죽고 목도를 놓으면 채찍에 맞아 죽는다고 해서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단종대라는 수술대라는 것이 있었다는데 이는 생식기능을 거세하는 잔인한 수술대였던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그들의 천국을 만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강제노역과 비인간적인 학대가 자행되었던 것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탈소록’을 위한 대규모의 간척 사업을 하는 소위 ‘천국 만들기’는 계속되었는데 이 때 환자들이 겪은 이야기들을 소설가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소설로 세상에 알렸습니다. 강제 노역으로 만들어내는 천국은 천국이 아니라 어떤 위대한 사람의 우상(동상)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허구를 드러냈습니다. 진정한 천국은 사랑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소록도 환자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학대했던 수호원장은 자신의 동상을 세우고 참배하게 했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애원하는 나병환자의 애원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측은한 마음으로 그에게 손을 갖다 대셨습니다. 그 누구도 가까이 가기를 싫어하는 환자의 몸에 손을 대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해 주겠다. 깨끗하게 되어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병환자를 격리한 채로 ‘그들만의 천국’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온전한 회복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누구나 불쌍한 사람을 보면 측은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래서 작은 정성이라도 돕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측은한 사람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들을 인력으로 어찌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수많은 장애인들, 가난한 사람들, 실직자들, 독거노인들, 결식아동들.... 이 사회에는 측은한 마음을 넘어서서 온전한 회복과 귀환을 간절히 바라는 애원의 눈빛들이 여기저기서 빛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을 대신할 수 있는 우리들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2월 15일 연중 6주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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